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13]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2 초롱초롱한 옅은 하늘색 눈동자에 코가 유난히 뾰족한 로즌 선생님이 여느 때와 달리 첫 시간부터 골머리가 아픈 등차, 등비수열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마치 하릴없는 귀족들의 난해한 숫자놀음에 불과해 보였다. 게다가 수업 진도도 무지하게 빨라,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이미 수학자들의 몸을 하나씩 펄펄 끓는 물에 담금질하고 있었고, 로즌 선생님도 절대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한숨만 절로 나왔다. 그나마 등차수열은 쉽게 따라갈 수 있었지만, 등비수열 계차수열의 설명을 연이어 들을 때는 외계언어 같아 내 머리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다. 아랫배조차 편치 않았다. 로즌 선생님이 잘 가르.. 더보기
[Social Fantasy12]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제2장 숲 속 비밀을 알게 된다면 1 “아침이야, 또 학교 늦겠다. 어서 일어나라니까!” “휴……” 다행히 어머니였다.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늘 그랬듯이 또 틀에 박힌 일상이 시작되고 있는 거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조금이라도 지각하는 꼴을 못 봤다. 그녀는 5분 정도 지각하는 학생이라도 교실 뒤로 내보내 수업 내내 손들고 서 있게 한다는데. ‘ 가끔은 자상하기도 하지만…… 얄미운 엄마다!’ 그래도 그녀의 카랑카랑한 으름장 놓는 목소리에 내 눈이 번쩍 띄었다. 악몽에서 벗어났다고나 할까. 진청 재킷에 흰 스카프를 목에 두른 그녀는 내 방에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창문을 활짝 열고 붉은 톤의 .. 더보기
[Social Fantasy11]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9 나는 숲 속 길목으로 바삐 들어섰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희미한 안개만이 발밑에 자욱할 뿐이었다. 한참을 뛰어가서야 그녀를 어렵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웃옷 단추 하나하나까지 꽉 끼게 잠근 에메랄드빛의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수인이 앞에 허리를 구부리고 가쁜 숨을 달래며 멈춰 섰다. 이 숲 속으로 가는 길목에는 환상적인 놀이터를 방불케라도 하듯 난쟁이들이 살 것 같은 작은 고풍스러운 빌라들이 촘촘히 즐비해 있다. 예전 같으면, 내가 아무리 늦더라도 그곳부터 그녀는 미리 마중 나와 다리를 굽혀가면서 마법사 난쟁이의 흉내도 내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같이 거닐곤 했다. 그녀는 늘 청초해 보였고……. 하지만 .. 더보기
[Social Fantasy10]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8 시간은 스스로 끝을 향해 움직인다고 누군가 말했던 거 같다. 마침내 수업 마치는 소리가 교회 탑 종소리보다 더 요란하게 울려댔다. 얼굴을 잔뜩 찌푸렸던 나는 에머튼 선생님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억지로 자제하려 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욱더 언짢아져 갔다. 아버지에 대한 처참한 여러 기억들과 함께, 새가 땅바닥에 꼬꾸라져 피 흘리며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생각으로 만감이 교차됐기 때문이다. 나는 수업이 끝났어도 뒤끝이 깨끗한 해방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잠으로 일관하던 학생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음꽃을 피우며 한꺼번에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해서든지 앞다퉈 누가 먼저 교문 밖을 .. 더보기
[Social Fantasy9]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7 재벌가와 타국의 외교관 아들딸들이 다닌다는 가람국제고. 학교에서는 낡은 운동화와 가방에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짝꿍 세진이의 집조차도 ‘중세왕가’를 보는 듯했다. 한번 쯤 시간 내어 그의 집에 놀러 가면, 담쟁이덩굴이 뒤덮인 대저택에 최신식 무전기를 든 까다로운 경비원 서너 명은 거쳐야 했다. 가끔은 내가 세진이의 친구인지 아는지, 연세가 환갑 쯤 되어 보이는 경비원이 손자뻘인 나에게 땅에 닿도록 굽실거리곤 했다. 나도 당연히 머리가 땅에 묻도록 인사했다. 하지만 이처럼 유복한 학생들이 대다수인 이 학교는 최근 5년 동안 대학 입시 진학률에서 전국 상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는 데도, 이상스럽게 매년 명문대 진학률은.. 더보기
[Social Fantasy8]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6 어쨌든, 지겨운 에머튼 선생님의 강의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잠을 깨려는 나의 강렬한 본능 탓인지, 몽롱한 기운이 사라지는 듯했다. 이미 나의 귀청을 울려 댄 말발굽 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고, 아주 흐릿하게 들렸던 늙은 여인의 절규조차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마치 내가 사악한 영혼의 빙의라도 벗어난 것처럼, 내 어깨도 한결 가뿐해졌다. 그젠가 교회 목사님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빙의에 대해 설교한 게 기억났다. 그가 종교학자 엘리아데(M. Eliade)를 인용하면서, 신령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빙의’라는 걸 말할 때는 내 몸에 찬 얼음을 댄 것처럼 오싹했었다. 어느덧 이런 상념도 무색할 정도가 되어갔다... 더보기
[Social Fantasy7]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5 여하튼 수업시간에 내 눈을 거슬리게 한 것은, 서영이와 알미안이 흠뻑 빠져서 하는 ‘날개 달린 종족’ 게임은 물론이고, 또 있다면 다름 아닌 그들이 즐겨 읽던 ‘무녀’란 책이었다. 그들은 그 책을 선생님 몰래 읽어가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겨드랑이 속에 5센티미터 크기만 한 날개가 있는 무당이 있다.’는 황당무계한 대목이 그들을 무녀 책에 홀리게 만든 거였다. ‘그들은 그 날개로 무녀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설마 날개의 위쪽은 곡선이어야 하고, 아래쪽은 직선으로 돼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들은 아니겠지.’ 유체의 속력이 증가하면, 압력이 낮아져 떠오르게 되는 비행(飛行)의 원리를 .. 더보기
[Social Fantasy6]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3 3 검푸른 암흑 속에서 두 사람의 밀담이 들려왔다. 한 사람은 그의 어깨가 피투성이로 비행기 날개에 찢겨 있었다. 여왕의 자태를 한 다른 이는 어디에도 상처 하나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온몸에 땀이 흥건해 있었다. “네가 호루스의 자손이냐?” 여왕의 모습을 한 여자가 애써 앞으로 팔짱을 낀 채, 자신의 신하에게 대하듯 말을 건넸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병원에 긴급 후송될 정도로 어깨에 피를 흘리고 있는 젊은 남자가 아픈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정중히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몇 명 정도가 죽었느냐?” 여자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씁쓸하게 그에게 물었다. “지금 인원을 파악하고 있는데…… 제일가는 .. 더보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