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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11] 카나리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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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9

  나는 숲 속 길목으로 바삐 들어섰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희미한 안개만이 발밑에 자욱할 뿐이었다. 한참을 뛰어가서야 그녀를 어렵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웃옷 단추 하나하나까지 꽉 끼게 잠근 에메랄드빛의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수인이 앞에 허리를 구부리고 가쁜 숨을 달래며 멈춰 섰다.

 이 숲 속으로 가는 길목에는 환상적인 놀이터를 방불케라도 하듯 난이들이 살 것 같은 작은 고풍스러운 빌라들이 촘촘히 즐비해 있다. 예전 같으면, 내가 아무리 늦더라도 그곳부터 그녀는 미리 마중 나와 다리를 굽혀가면서 마법사 난이의 흉내도 내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같이 거닐곤 했다. 그녀는 늘 청초해 보였고…….

 하지만 오늘만은 에메랄드 숲 속에 빽빽하게 들어선 버드나무가 가파른 절벽에 그림자 진 것을 닮기라도 하듯, 어두운 잿빛이 그녀의 얼굴에 잔뜩 드리워져 있었다. 마법사의 흉내는 커녕 고민도 많았는지 머리까지 풀어헤친 모습이, 마치 가지가 축 늘어지고 뿌리마저 새까맣게 썩어들어 간 생기 없는 나무처럼 보였다. 게다가 숲 속의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혀 일어난 거센 소용돌이 바람에, 어느새 교복 대신 갈아입은 에메랄드빛의 하늘하늘한 시폰 원피스가 들러붙어 그녀의 여린 몸을 드러냈다. 그녀의 상반신과 하반신의 나약한 가냘픈 선이 오늘따라 애처로움을 더했다.

  “요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니……?”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가 걱정되어 물어봤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말을 단 한두 마디의 침통하고 차가운 말로 외면했다.

 “전혀……아니야.”

 그녀는 파르르 떨며 툭 던지는 이런 냉랭한 목소리로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여느 때처럼 그녀의 집게손가락으로 내 가슴에 십자가 표시를 해주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따스하게 감쌌다. 그녀는 진지하고 성스러운 나와의 만남을 늘 유지하고 지켜가고 싶다며, 십자가 표시를 하게 됐다고 말해왔다.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그녀의 강렬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한테서 언뜻 수업시간에 내 목을 휘감은 하얀 실뱀이 연상됐다. 나는 당황해 하면서도 엷은 웃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설마 수인이가 네 발 달린 실뱀으로 변해 끈적끈적한 독을 내 목에 분수처럼 뿜어 대지는 않겠지…….’

 예전과 확실히 달라진 그녀의 모습이 몹시 놀라웠다. 강렬한 감정과 몸짓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여느 때 그녀와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확실했다. 나는 의심 없이 그녀에게 순응하려 했다.

 ‘왜일까?’

 그늘져 보인 그녀는 뭔가 나에게 전해줄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물로 젖은 그녀의 눈동자마저도 형언할 수 없는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헤어지자는 날벼락 같은 말은 아니겠지.’

 나는 초조해졌다. 그런데 어느새 가까이 있었던 나와 수인이가 떨어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인이가 변덕스럽게도 나를 살짝 밀쳐낸 거였다. 침묵이 흘렀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유일하게 둘 사이에서 황혼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미세한 먼지가 떠다니고 있을 뿐이다.

 ‘, 그러면 그렇지. 너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그녀의 변덕스러운 모습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무슨 말부터 꺼낼지 몰라 머뭇거리는 듯했다.

 그녀의 우수 어린 눈빛이 쉽게 감지됐다. 예전과는 다른 심각한 뭔가의 일이 있어 보였다. 그녀의 말을 기다려야 했지만,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막감이 맴돌았다.

 그녀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몸은 좀 어떠니?”

 나는 그녀의 첫 물음에 네 몸이나 걱정하시지.’라는 냉소적인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늘 새들이 운동장에 많이 날아왔지……. 많이들 죽었니? 불쌍했지? 그리고…… , 우리 학교에 졸업반 담당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오신다는 소문 들었니?”

 그녀는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다급히 두세 가지 질문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무슨 소문?”

 나도 모르게 그녀의 첫 물음에 에머튼 선생님의 보물인 막대기에 맞아 피를 흘리는 새가 떠올라, 순간 멍해져서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곰곰이 정신을 차려가며, 기억을 더듬었다. 다행히 그녀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 떠올랐다.

 ‘내가 왜 미처 그 생각을 못했지!’

 나는 그녀 말의 뜻을 간신히 알아낸 것처럼, 살며시 손뼉을 치고는 입을 조심스럽게 땠다.

 “, 알지. 실력파 선생님, 존 샤인트 K. 한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대학원에서 고생물학과 국제정치학 박사를 동시에 취득한 천재 선생님이라고나 할까?”

 한스 선생님은 당찬 신념의 소유자로 꽤 유명했다. 그의 연구업적은 세계적인 학술지에도 실릴 정도로 뛰어났는데도 대학교수 자리를 마다하고, 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게다가 자신이 맡은 학생들을 거의 다 명문대학에 입학시킬 정도로 지혜와 지식, 리더십도 탁월했다. 그를 탐내지 않은 학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름은 샤인트 한스이라나 뭐라나. 대체로 이름보다는 실력파 선생으로 통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한 끝에서야 그녀가 뭘 묻고 싶은 건지 조금씩 추측해 갈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스 선생님은 이전 학교에서 큰 말썽을 일으킨 나머지 실력파 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교사직에서 파면 당했다. 이 소식은 방송에도 나올 정도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가 왜 파면 당했는지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아니, 없다고 볼 정도였다.

 항간에 떠도는 말로는, 그가 학교 수업 중에 배설과 생식기능이 분리되지 않은 새들의 생식기관의 이야기를 인간의 남녀 생식기관과 비교해가면서, 아무 여과 없이 노골적으로 열띤 강의를 했다는 거다. 심지어는 닭 날개를 먹으면, 왜 바람이 나는가?’라는 호기심 어린 질문들을 내놓고는, 닭 날개를 남성 경험이 풍부한 여성의 깊고 은밀한 작은 부위로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다. 그 내용을 듣던 학생이 교육부에 그 글을 총배설강이란 제목으로 재미삼아 게시한 것이 눈덩이처럼 문제가 커지고 만 것이다. 나중에 한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말한 내용이라는 것이 밝혀져, 그가 파면됐다는 소문이다. 교육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즉시 삭제됐고, 그는 음란죄로 파면당한 꼴이 돼 버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람국제고는 그를 원한 것이다. 우리 학교는 전국의 상위권 학교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명문대 진학률은 계속 내리막길이다 보니, 학교 입장에선 그가 어떤 일로 파면 당했는지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학교 당국은 무조건 실력파 교사가 필요했다. 나로서는 그가 야설같은 강의를 늘어놓았다고 해도 교단에서 파면시키는 건, 당국의 무리한 조치라고 생각해왔다.

 ‘무덤을 도굴하거나, 떨어진 새를 구워 먹을 정도로 야만적인 것도 아니고…… 잠도 깨고 좋은데…….’

 이건 대다수 남학생들의 정서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수인이는 그런 선생님이 싫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녀를 탐하려고 기회를 엿보기만 해도 완강히 거부하는데 말이다. 언젠가 한두 번 없는 용기까지 내어 그녀의 흰 속살을 보려고 웃옷 단추를 풀려고 하면, 그녀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하며, 정색하곤 했다. 마치 내가 성추행 범이 된 것만 같아 가끔은 울적해지기까지 했고. 그래도 난 짓궂게 그녀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고 싶었고, 거리낌 없이 불쑥 내 속내를 드러내곤 했다.

 “, 그가 야한 선생님이라서 싫은가 보구나…….”

 “으으응, 좀 그렇지……

 “솔직히 말해봐! 좋으면서 큭큭, 응큼하긴…….”

 나는 들리듯 말듯 장난있게 말꼬리를 흐렸다.

 “아니, 그 그 그게 아니고, 그의 지혜만큼은……. 집에 가자, 나 피곤하네. 그리고 나, 이젠 통금 시간이 생겼어.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해.”

 그녀는 이 말만 어렵게 내뱉고는 입을 굳게 다물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가 오늘은 왠지 이상해 보였다. 뭔가 감추는 듯했고 슬퍼 보였다. 장난 어린 말만 해도 내 오른쪽 뺨에 살짝 입맞춤해 주곤 했었는데…….

 행여나 한스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부임한다 해도, 대학 입시가 임박할 때라서 당연히 그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졸업반을 주로 맡을 것이 뻔했다. 2학년인 그녀가 직접 그와 부딪힐 일은 거의 없는데 말이다.

 여하튼 그녀는 끝내 눈살을 찌푸리면서까지, “집에 가자.”라는 말을 쉽게 내뱉고 말았다. 항상 먼저 나에게 갈까?”라고 간신히 묻던 그녀였는데…….

 ‘가끔은 그녀와 자정이 넘도록 밤새껏 얘기한 적도 있었고. 그때마다 신기하게 수십일 굶어 비실해 보이는 개구리와 도마뱀 둘이 우리 앞에 얼씬거렸단 말이야. 어디에선가 애호박 하나가 떨어져 굴러 오기도 하고. 그런데 따다 남아 붙은 이것의 잎줄기도 가을 서리를 된통 맞았는지 흐물흐물 거리며, 맥을 못 추는 듯했어. 아무튼 내가 오늘은 좀 장난이 심했나?’

  나는 그녀가 가지 못하게 치맛자락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원래부터 소심한 구석이 있는 수인이가 오늘은 여러 일로 예민해진 나머지 그랬을 듯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다.

  그보다 그녀를 만날 때부터 나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게 있었다. 기대고 서 있는 십여 미터 높이의 말채나무 위쪽에서 가끔씩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낯선 그림자도 어른거리는 듯했다. 그곳에서 누군가가 줄곧 날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계곡에 자생하는 키 큰 나무라서 자세히 올려다볼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혹시 날 흠모하는 실비아가 질투심에 여기까지 미행해 온 거겠지 하고 의심해보니까, 이번만큼은 소름이 확 돋았다.

 분명 말채나무 위쪽임에 틀림없었다.

 ‘설마 그 아이가 저 나무 위쪽까지 올라가기야 하겠어.’

 나는 호기심에 위를 슬쩍 쳐다봤다. 하지만 열매와 잎사귀가 빽빽할 정도로 무성해서 더 이상 뭐가 있고 없고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니면, 오늘 학교 운동장에 날아든 새들이겠다 싶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건 아닐까.

 그녀의 심기는 나와는 달리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녀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텅 빈 나무 위만 쳐다보는 내 모습이 피곤하고 짜증났나 보다.

 “얼른 가자니까!”

 그녀는 참다못해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얼마나 그녀가 힘껏 잡아당겼는지 그녀의 풀어헤친 머리가 내 뺨까지 때려버렸다.

  그날 밤 꿈만큼은 내가 기어코 수인이와 깊은 사랑에 빠질 것을 결심해 봤다. 나는 잘 될 거야.’ 하며 스스로를 위로도 하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결국은 꿈속에서마저도 그녀는 나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칼날처럼 번득이며, 나의 손가락을 비어버렸다. 그러다가 나무 위쪽에서 시커멓기도 하고, 에메랄드빛까지도 나는 날개 달린 짐승이 나를 덮치는 게 아닌가. 무시무시한 악몽이었다. 나는 새벽녘인가…… 잠에서 깨고 말았다. 간담을 서늘하게 한 꿈이 내 잠자리를 어지럽힌 것이다.

 게슴츠레 한 눈으로 악몽에 시달린 탓인지 식은땀에 베게 잎이 흠뻑 젖어 있었다. 혹시 어제 저녁에 그녀와 겪었던 일들이 악몽으로 등장했나 싶었다.

 ‘그러면 나무 위에 있었던 건 뭐였지? 박쥐였을까? 꿈에서는 박쥐보다 컸었고 시커멓지만은 않았는데…….’

 이런 여러 상념이 교차하다가, 내 눈은 스르르 감겨왔다. 그 후론 시간이 멈췄는지 흘러갔는지 도무지 감지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쓸모없는 잡초가 되어 간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가위 누르듯 짓누르고 있었다.

 갑자기 내 방의 문이 쾅쾅울려댔다. 순간 날개 달린 짐승이 연상됐다. 현실과 꿈이 뒤섞였다. 나는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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