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7
재벌가와 타국의 외교관 아들딸들이 다닌다는 가람국제고. 학교에서는 낡은 운동화와 가방에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짝꿍 세진이의 집조차도 ‘중세왕가’를 보는 듯했다.
한번 쯤 시간 내어 그의 집에 놀러 가면, 담쟁이덩굴이 뒤덮인 대저택에 최신식 무전기를 든 까다로운 경비원 서너 명은 거쳐야 했다. 가끔은 내가 세진이의 친구인지 아는지, 연세가 환갑 쯤 되어 보이는 경비원이 손자뻘인 나에게 땅에 닿도록 굽실거리곤 했다. 나도 당연히 머리가 땅에 묻도록 인사했다.
하지만 이처럼 유복한 학생들이 대다수인 이 학교는 최근 5년 동안 대학 입시 진학률에서 전국 상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는 데도, 이상스럽게 매년 명문대 진학률은 점점 줄어갔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조금이라도 성적이 떨어지는 조짐이 보이기라도 하면, 긴장을 늦출 여유가 없었다. 에머튼 선생님에게는 수업에 방해되는 거라면, 새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이유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새를 애지중지해왔고, 조류 분야의 고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 꿈을 갖고 있다 보니, 그의 행동은 상식 이하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가 보는 앞에서 그의 보물 1호인 뾰족 막대기를 무참히 산산조각내고 싶었다.
★
새 생각만 하면, 나만 믿고 사는 불쌍한 어머니……. 얼굴에 굵직한 주름살만 늘어가는 내 어머니가 운명처럼 떠오른다. 어머니도 분명 그의 생각 없는 행동을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나보고 무조건 참으라고 하겠지…….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닮아 새들을 너무 좋아한다며, ‘조류도감’ 책들을 사주곤 했다.
그런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나의 아버지.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가 있었더라면, 가난하더라도 괜히 남들 앞에서 위축되고 자신 없어 하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내가 열 살 때, 아버지는 조류학 박사 논문을 심사받으러 바삐 차를 몰고 가다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당시 앞에서 뭔가 날아오는 물체를 피하려고 핸들을 급히 꺾었지만, 도로 옆 난간에 부딪히고 말았다는데…….
사고가 나자, 맨 먼저 달려온 이는 아버지랑 깊은 친분이 있었던 로컬신문의 ‘킴란스’ 기자였다.
그는 지적인 외모에 훤칠한 키로 정치인도 벌벌 떤다는 로컬신문의 칼럼을 도맡아 쓴데다가, 어느 기사 내용을 선택하고 버릴지 결정하는 ‘게이트키핑’까지도 그의 몫이었다고 한다.
검찰 경찰뿐 아니라, 주위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을 단순하고 우연한 사고로 치부해버렸다. 말하기 좋아하는 무속인들도 마녀가 질투한 나머지 귀계로 데리고 갔다고들 했다. 하지만 그만은 달랐다. 그는 사고 난 당시 새 깃털이 아버지 차 안에 잔뜩 흩어져 있는 걸 보고 수상히 여겨 오랜 시간에 걸쳐 취재했단다. 심지어 차의 뒷바퀴 밑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린아이의 발 크기만 한 유리 구두 한 짝을 주워들고, 저명한 조류전문가들을 만나러 독일, 미국, 이집트도 갔었다. 특히나 청와대 국방부 과학수사부에도 잦은 출입을 감행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취재한 자료들을 노트북 디스크에 저장해서 오다가, 안타깝게도 우리 학교 근처 상티밸리 골짜기 난간 밑으로 떨어져 즉사했다는 것이다. 취재한 자료들은 그가 50여 미터 절벽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산산조각 난 노트북처럼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흔적조차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때도 밖으로까지 창자가 난자해 있던 킴란스 기자의 시신 옆엔 어김없이 수십여 개의 새 깃털이 떨어져 있었다는 거다. 게다가 아버지가 죽었을 때처럼, 유리구두 한 짝이 덩그러니 그의 허리춤 옆에 놓여 있었고, 그의 오른쪽 바지 호주머니에는 4B연필로 엉성하게 베껴 그린 지도가 꼬깃꼬깃 접혀있었다는데. 그 지도는 결국 유리구두와 함께 공개되지 않은 채 경찰 손에 넘어갔다고 한다.
경찰은 그가 일의 스트레스로 매춘부가 따라준 세상에서 독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폴란드산 ‘스피리터스’ 술을 자제 없이 마셨다가 일어난 봉변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자연스럽게 필사 지도와 유리구두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자살이라는 추측이 무성했고, 그 지도에 표시된 곳에 관해선…… 심지어 킴란스 기자가 마약 중독자라서 은밀하게 소량의 마약 거래를 하려고 가던 장소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자필 유서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독실한 금욕적인 청교도 신도라서 입에 술 한 방울도 대지 않았다는 점을 미뤄 보면 말도 안 되는 억측들에 불과했다.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정도로, 타살이 아니라는 판단이 일관되지도 않았고 구체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저마다의 가슴속으로 터무니없는 공포가 끔찍할 정도로 밀려들었다. 하지만 애매한 정황 탓에 그의 죽음을 선뜻 타살이라고 주장할 변호사도 그 당시 그리 있어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인기척도 없는 좁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지금도 이런 동요에 잠길 때마다 먹고 있던 과자를 입에 가져가는 것도 잊은 채, 봉지 안에 든 과자들을 손가락으로 바스락거리기만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킴란스 기자의 시신은 결국 상티벨리 골짜기에서 600여 미터쯤 떨어진 국립지역묘지에 묻히게 됐다. 나의 아버지 묘소는 우연인지는 몰라도 그와는 불과 1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킴란스 기자가 무덤에 안치될 때는, 햇살이 흘러들어오는 듯싶다가도 어둑해지면서 붉은빛 우박이 금방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잠시 동안 떨어졌다. 그러더니 그의 죽음을 애도하듯, 하늘에서 도토리 크기만 한 장난감처럼 생긴 긴 머리의 거위벌레 수십여 마리가 산등성이를 타고 날아들었다. 그것들은 일제히 단단한 등껍질을 열어 레이스 모양의 섬세한 날개를 활짝 폈다. 인도양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의 서식하는 그것들이 어떻게 이곳까지 날아 왔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한참 그의 무덤 주위를 서성거리듯 맴돌다가, 지친 몸을 가누지 못한 한두 마리 거위벌레는 그 자리에 떨어져 죽고 나머지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직후였다. 잔뜩 그림자 진 얼굴을 한 어머니는 악마의 하수인이라도 될 작정을 한 것처럼, 아버지를 따라 생애를 마감하려 했다는데. 하지만 그녀는 주위의 끊임없는 만류로 참혹한 기억의 잔재를 송두리째 지워버리기라도 하는 듯 모든 걸 잊고 일에 더 매진했단다.
그래도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었을까. 나를 아버지가 다녔던 귀족들의 학교, 가람국제고에 입학시켰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갑부 아이들과 어울리다가 상심할 거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안 했나 보다. 나는 지적 갈증과는 무관하게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할 때가 종종 있었다. 우울하고 마음이 답답하여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 앞에서 보라는 듯이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사정없이 내팽개쳐 봐도 소용없었다. 역효과만 있을 뿐이었다.
그녀를 사로잡는 건 오로지 아버지였다. 날 보면 조류 연구밖에 모르던 아버지가 기억나는 모양이다. 그녀는 새에 대해 애착을 넘어 광적으로 집착하는 나를 보면, 나중에 새랑 결혼하라고 핀잔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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