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발자취 자료 39
진정한 진보란?
(구제목 : “진정한 진보는 ‘문재인 후보’가 아니었다”)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CJI 연구소 운영위원장
문재인 대선 후보 시절 때 칼럼이다. 지금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도 집권초기 보다는 낮지만, 40% 이상을 선회하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 보자. 그리고 처음 마음가짐이 중요할지 모른다. 최근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는 경기 침체 불황 등을, 지지율이 높았던 집권 초심 기조를 탄탄이 하여 이정표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 편집자 주 -
001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8대 대선에서 승리하며, 재집권’이 이뤄졌다고 한다. 정치사적 스펙트럼을 보면, 이를 부정할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는 없다. 진보진영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으로 이어지는 간단한 도식이 성립된다. 하지만 이를 뒤집을 사상과 정책사적인 근거는 여러 문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010
근대 관념론의 완성자로 불리는 헤겔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내놓은 칼 마르크스 계열 등의 학자들이 있다. 이들에게서 애써 진보 개념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모순에 대한 비판과 합의, 더 나아가 발전이라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헤겔에게선 발전의 의미가 조금은 내재적이고 퇴색되어 보이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 틀 안에서는 문재인 후보뿐 아니라, 심지어 보수라 불리는 박 당선인조차 의심 없는 ‘진보주의자’라는 평을 들을 수 있을 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개혁과 정책 실천의지 등의 정도에 따라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그렇다면 문 후보는 진정한 진보일까?
011
문 후보는 정치 스펙트럼과 성향이 진보일 수는 있어도, 현실에서는 그의 진보성에 의구심을 지우기 어려웠다.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협상과정에서, 그는 각 진영의 입장에 대한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데에는 안 후보와 마찰이 있었고, 정작 합의하는 과정에서도 충돌을 빚었다. 그러곤 석연치 않은 합의로 이끌면서, 진정한 진보적인 발전 과정에 흠집을 내고 말았다. 그러면서 이에 실망한 보수진영이 단단히 결집하는 결과를 낳았다. 진보라고 불리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도 이 같은 맥락이었다. 이 후보는 1차 TV 토론에서 뛰어난 토론실력에도 불구하고, 박 당선인의 과거사에 흠집을 내며 공세를 펼친 것이 오히려 50대와 60대를 결집시켰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한 것이다. 이 두 후보는 결국 진정한 진보논리를 따르지 못하면서 박 당선인을 도운 격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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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진보라고 자처하는 논객들이 박근혜 캠프와 박 당선인의 도덕성에 흠집 내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생식기 운운한 황상민 연세대 교수는 자신의 입장해명에만 급급하게 됐고, 진중권 동양대 교수 등은 2차대선 토론평가에서 박 당선인에게 빵점을 내놓는 등 감정의 골을 내비치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이처럼 진보진영에서 비판을 위한 비판에만 몰입하다보니, 이에 식상한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이들의 동의를 이끄는 변증법적인 진보논리도 이에 따라서 점점 망각되고 있었다. 급기야 박 캠프는 비판에만 빠진 진보진영의 고삐를 단단히 잡고 보수진영의 자연스런 결집을 활용하여 어느새 정국의 주도권(이니셔티브)을 잡게 돼 버린 것이다.
101
나는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 때 기자를 한 기억이 난다. 국회와 정부, 청와대(춘추관) 등을 출입하며, 어느 누구보다 국가 정책정보에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이 두 정부가 서민을 위한 정부라는 입장을 갖고 있어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기자였던 내 자신도 서민을 위한 정책의지를 피력했던 이들 정부가 집권초기와 다르게 시간이 점점 지나가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서민 정책과 재벌 정책의 혼선을 빚으면서, 정책의 이정표가 상실되고 만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소비가 얼어붙고, 기업의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서, 노무현 정부의 탄핵 심판까지 이르게 되었다. 국가 전반에 걸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서 나라발전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진정한 진보는 아마도 머릿속에만 있는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에서 실현시켜야하는 과제와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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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소설가는 최근 박 당선인을 보고 ‘나치’로 비유했다. 박 당선인이 진보성이 결여됐고, 과거로 회귀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일 거다. 한마디로 ‘진보주의’의 논리를 따르지 않을 거라는 말일 게다. 하지만 공지영 소설가도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진보진영이라고 하는 이정희 후보 등이 본의가 아닐 수 있겠지만, 현실에선 박 당선인을 크게 도운 격이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진보논객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비판에만 몰입하고 있을 때, 어느덧 박 당선인은 자본주의의 새판을 짜고 있는 것이다.
공 소설가의 나치 발언이 진보적인 논리 속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이미 답이 나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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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공부가 요구된다. 무조건 사건과 대상에 대한 비판에 앞서, 합의와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이 필요하다. 그게 잘 그려지지 않으면, 비판을 잠시 멈춰야 한다. 그 대안 없는 비판은 진보가 아닌 오히려 지독한 보수에 머무르는 ‘뒷북치기와 쓸데없는 잔소리’에 불과하게 된다.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양산하게 된다. 진보적인 발언이 썩은 보수로 치닫게 된다는 걸 유념해야한다.
문 후보가 진정한 진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젠 그만 나서겠다'는 그의 정의어린 목소리보다는 ‘또 다른 공부’로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2012년 12월 CJI 연구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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