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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Commuication & Jornalism

[CJI THINK] 언론의 출발점은 교회(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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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I THINK 

언론의 출발점은 교회?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CJI 연구소 운영위원장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안다는 현인들. 

 고대나 중세 시대였다면, 기본 원리를 잘 알고 있는 철학자나 성직자들이 현인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처럼 어디로 갈지 모르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치 경제영역이든, 교육영역이든 급속히 변화하는 미래의 방향과 시점을 잘 예측하고 분석할 줄 아는 분야마다의 전문가가 오늘날의 현인일 듯싶다. 미국의 정책 전문가일 수 있는 미래학자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들 현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해에서 이정표 없이 표류하는 배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파성의 논조도 갖는 언론에 등을 돌리고 실망감에 빠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언론'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어쩔 수 없이 봉화나 비둘기 등으로 소식을 전했던 언론 사상의 출발점은 고대나 중세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신의 메시지가 예전부터 교회의 설교나 강론에 선포되어 전해져왔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효과라는 측면에서 보면, 권력과 교회가 크게 구분되어 있지 않은 시절이어서 인지, 그 당시 성직자의 설교나 강론의 메시지는 총알이론(bullet theory, 블럿)처럼 직접 우리 머리를 강타해서 기득권 논리가 전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확대돼서, 전자신문 인터넷 휴대폰 보도기사 및 칼럼, 텔레비젼 광고 등의 미디어에서 신의 메시지가 직간접적으로 전해질 수 있다. 이를 발견하는 노력으로 언론학이 싹터오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기독교와 언론은 사상사적 측면에서 크게 관련 맺어 왔던 것이다. 

 고인이 된 김수환 추기경도 미디어를 미국 광고전문가 토니 슈바르츠의 주장인 '제2의 신(神)'이라고 인용하기도 했다. 혹자는 과거 신학과 철학이 지금의 언론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같은 근거와 주장들은 결국 기독교 사상 등에서 침묵해왔다고 봐야 한다. 신의 메시지를 교회에 갇아 버린 채, 인터넷 휴대폰 메시지 등과는 선긋기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가 '급변하는 사회 문화' 속에서 스스로 교회라는 곳에 안주하는 식이 됐다. 

 이젠 기독교 교회가 이에 대해 말해 줘야 한다. 교회가 박물관으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선.

   

CJI 연구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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