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제8장
날아오른 어린 새 베니
★
고풍스러운 반원형의 계단식 대학 강의실. 청록색 페인트칠이 살짝 벗겨진 창가에는 담쟁이덩굴이 반쯤 뒤덮여 있었다. 그 틈으로 따사로운 빛이 새어 들어왔지만, 바람은 씽씽 불어댔다.
이 강의실을 둘러싸고 있는 흰 벽에는 20세기 다윈으로 불리는 조류학자 에른스트 마이어의 사진이 뎅그러니 걸려 있었다. 그는 이 세상이 순수 인간들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목소리 높여 주장해온 이단아였다. 누군가가 와서 그의 사진을 흠집을 내려 했는지, 사진의 액자 모퉁이가 두 군데나 깨져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헤라클레이토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사상가들의 액자도 여럿 걸려 있었다. 이런 곳은 실용적인 공학보다는 자연과학이나 논리학과 라틴어를 가르치는 순수 학문의 전당처럼 보였다. 여기서 그 액자 사진의 인물들 못지않게 열변을 토하며 강의하는 교수가 있었다. 그는 마치 이 강의실에 적합한 학자처럼 현실에 쓸모 있어 보이는 이야기들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허황된 건 아니었다.
그는 여러 세파를 겪었는지 굽은 어깨에 몸은 야위었고, 늙어도 보였다. 하지만 희끗희끗한 콧수염과 그리 길지 않은 곱슬머리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한쪽 다리가 불편했는지, 오른손으로 네모 반듯한 교탁 위를 받쳐 그의 몸을 가까스로 지탱했다.
그는 귀찮을 정도로 흘러내리는 금테안경을 이따금 치켜 올리며 고대 생물과 조류학을 힘겹게 강의했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천여 명의 학생들은 의자에 등도 붙이지 않은 채, 그 교수가 상세하게 적은 칠판 글씨와 강의에 열중했다. 다들 그 교수의 강의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트 구석구석에 깨알 같은 글자들을 적어 넣느라 분주해 보였다.
하지만 그 교수는 너무 진지한 분위기가 싫었나 보다. 때때로 자신이 어렸을 적 배고파서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날개를 떼어내고 그것의 가슴 고깃덩어리를 단숨에 먹어치웠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폭소와 함께, 여학생들의 작은 비명도 흘러나왔다.
그 교수는 한참을 말하다가 목이 잠겼는지, 여러 번 헛기침을 하고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강의가 끝나려면 아직 20여 분 정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이크에 입을 보다 더 가까이 가져가더니 오늘 강의는 이 정도로 마치고 다음에 이어 강의하겠다며, 그의 급속히 저하된 체력 고갈을 이유로 들었다. 강의를 마치겠다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교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처럼 마이크를 끄고 다소 몸이 불편한 듯 절뚝거리며 강단에서 내려왔다.
그의 의지대로 강의가 끝나기는 했지만, 여러 학생들이 떼거리로 강단 앞에 몰려들어 질문을 하느라 그의 주변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교수는 몹시 지쳤나 보다. 마침내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다음 수업 시간에 대답할 것을 거듭 약속했다.
그럼에도 수업 듣던 한 여학생이 멀찌감치 서 있다가 더 이상 기다리기가 힘들었는지, 못다 한 질문을 하려는 듯 그 교수에게 달려갔다.
“저, 교수님! 죄송한데요……”
“학생, 다음 시간이라고 했지!”
그는 짜증이 섞인 말투를 섞어 응했다.
하지만 그 학생은 다름 아닌…….
“아, 수…인이구나. 변한 게 없어. 그대로야. 근데…… 한국국립대 학생이 되었나 보군. 놀랍네.”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돋아났다.
“네, 한스 교수님. 교수님이 이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걸 우연히 지나가다가 보게 되었어요. 학생들이 교수님을 무지 좋아하던데요.”
“그냥 예전처럼 선생이라고 부르지. 내 제자가 되려고 아부하려는 건가? 이젠 나는 늙어가……. 머리도 군데군데 빠져서 중절모도 써야 될 듯싶네.”
한스 선생님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 어느 누구도 제자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 정말 멋진 강의였어요!”
수인이는 나름대로 확신에 차서 말한 것이다.
“내 강의를 끝까지 들었나? …… 그래도 새들은 선악을 구분해가면서 싸우지는 않지. 선악은 시대마다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고. 자기 종족만을 지키려 하기보다 약한 것을 감싸잖아. 나는 그걸 말하고 싶었네.”
하지만 모든 새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가 훈련시킨 새들이 유별날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그의 말에 과거가 생각난 모양이다. 그녀는 애써 그에게 따지려 하지 않았다.
“아름다웠던 기억들이었어요, 그렇죠? …… 선생님 강의는 강의실에서든 밖에서든 항상 멋지시네요.”
“늙은이를 놀리는군.”
수인이와 한스 선생님은 학생들 틈을 비집고 어렵게 강의실 문밖으로 나왔다. 뒤따라 나오던 학생들이 체념하듯 하나둘씩 멀리 사라졌다.
# 해당 주석은 단행본에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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