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5
화식조의 부리는 주둥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해 보였다. 그것의 부리는 너무나 육중했다. 그걸로 육식 생물조차 게걸스럽게 먹어 댔다.
불을 삼킨다는 화식조. 그것은 악당이 분명했다. 석탄재도 먹는다는 전설도 있다. 게다가 뿔처럼 생긴 볏은 투구처럼 보였다. 크기가 2.5미터 이상에 몸무게도 150킬로그램이 훨씬 넘어 보였다. 수컷보다는 암컷이 크다고 하는 데, 아마도 암컷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예전에 신비스럽게 어디선가 날아 들은 푸른 빛깔의 화식조! 그땐 꿈으로만 여겼었는데…….
하지만 그것은 선천적으로 날지 못하는 조류이다. 당연히 화식조는 이 전쟁에서도 날 수 없었다.
‘꿈속에서는 뭐든지 날지 않나? 그래, 그건 현실이 아니야. 우린 훨훨 날 수 있는 날개가 있잖아. 부딪혀 보자고! 용기를 내자고!’
나는 화식조가 날 수 없는 약점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허황된 낙관도 잠시뿐이었다.
화식조는 엄청난 괴력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강력한 근육 덩어리의 두 다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 앞머리에 프로펠러를 갖고 있는 전투기들이 페나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프로펠러의 회전수를 급속히 늘리더니, 페나들의 날개에 프로펠러를 갖다 대었다. 그들의 날개가 그것에 ‘파팍팍’ 갈리더니, 붉은 피가 공중에 난사됐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전투기 공격에 정신이 나가버렸다. 이젠 날 수 있는 날개마저도 피투성이가 되어 제구실을 못하는 듯 그들은 땅바닥으로 추락해 나뒹굴었다.
그 두 마리의 괴물 같은 화식조는 전투기의 프로펠러로 날개가 찢겨지거나, 날개 한쪽을 잃어 날 수 없는 페나들에게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그들을 먹어 치웠다. 이리저리 피가 튀겼다. 참혹했다. 한마디로 깔끔하게 전쟁을 마무리하겠다는 한스 선생님의 전략이었다. 이젠 그의 승리로 끝날 거라는 건 어떤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화식조들이 날지 못해서인지 전쟁은 쉽게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공중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처음과 달리 전투기의 도움도 무색해져 갔다. 가끔은 페나들이 무더기로 전투기의 프로펠러에 달려들어 자폭했다. 전쟁의 광신자처럼 말이다. 전투기의 프로펠러에 그들의 몸이 한꺼번에 끼어 프로펠러가 원활히 작동되지 않으면서 그들과 함께 추락하기도 했다. 화식조의 약점을 전투기가 대처했지만, 우리는 이걸 육탄으로 막아내면 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슬픔이 가득 담긴 성스러운 전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긴 칼을 프로펠러에 던져 전투기를 그 자리에서 추락시키는 방법도 찾아냈다. 한스 선생님의 전략도 여러모로 한계가 엿보였다. 내 생각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의 한계 못지않게 나의 전쟁 전략은 그의 전략의 한 수 아래였던 것이다. 나의 에메랄드빛 날개의 위력도 여기서 끝나게 되는 걸까. 전투기들이 제구실을 못하면서 갯벌에 대기 중이던 공군들이 점점 가세하고 있었다. 로켓도 빗발치듯이 날아왔다. 불꽃들이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하나둘씩 날개 잃은 페나들이 땅 아래로 떨어지면서 화식조의 먹잇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실비아의 얼굴은 더욱더 창백해져 가고 있었다.
괴물 같은 화식조들은 이리저리 살폈다. 뭔가를 찾는 듯했다. 마침내 그것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는 나와 실비아를 노려봤다.
하지만 화식조는 타조처럼 발 빠르게 달릴 수는 있어도 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더 이상 공격할 수가 없었다.
화식조들은 공격을 지휘하고 있는 우리들이 땅 아래로 떨어지길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운명처럼 우리에게도 아찔한 순간이 찾아왔다. 실비아와 나의 날개가 국가특공대가 쏜 포탄에 동시에 맞게 되었던 것이다. 실비아는 오른쪽 날개에 불이 붙었고, 나는 양쪽 날개가 찢겨졌을 뿐 아니라 옆구리에 어느새 5센티미터 만한 총알까지 박혀 있었다. 엔진에 구멍 나 기름이 새어나오듯 내 옆구리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실비아는 중심을 잃더니, 땅 아래로 떨어졌다. 나도 서서히 어지럽더니,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화식조가 먼저 땅 아래로 떨어진 실비아의 날개를 날카로운 주둥이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붉은 피가 이리저리 튀었다. 페나들은 다들 화들짝 놀라 물러서면서 앞다퉈 도망가고 있었다. 나도 땅 아래로 곤두박질치듯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엇’ 하는 순간에 실비아는 화식조에게 처참하게 먹히고 말았다. 그것은 일 분도 채 넘기지 않았다. 실비아의 잔인한 운명이었다. 마지막 인사도 없이 내 곁을 홀연히 떠나고 만 것이다. 그녀의 호위병은 벌써 달아난 지 오래였고.
나는 이대로 떨어져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밝게 웃는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수인이는 어디선가 날아들어 공중에서 떨어지는 날 간신히 붙잡아 자신의 품에 안았다. 나의 어머니처럼 생긴 늙은 여인네는 여전히 마법이라도 부릴 듯한 지팡이를 들고 저 멀리서 날 품 안에 안은 수인이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 순간 또 다른 괴물 화식조가 수인이를 공격하려 했다.
그때 마침 한스 선생님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 나와 그를 지켜준 새들을 부르고 있었던 거다. 해파리 새, 앵무새들, 심지어 바다 위를 나르는 앨버트로스까지 수십 수백 마리가 수인이와 나를 감싸 화식조의 공격을 막아주는 게 아닌가.
국가특공대의 공격은 지칠 줄 몰랐다. 전투기까지 날아들었다. 궁수도 떼거리로 몰려들어 우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어디서 또 포탄이 날아왔는지 나의 몸에 맞은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살 속에 포탄 조각이 파묻혀 있었던 거 같았다.
영특했던 한스 선생님도 예상치 못했던 일일까? 그는 국가를 배신할 수도 없는 일이라서 괴물 같은 새를 보내 실비아만 죽일 생각이었던 건가?
그는 더 크게 휘파람을 불어댔다.
한 폭의 병풍처럼 현란한 색들을 뿜어내는 새들을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이 날아들게 하여 나와 수인이를 감싸게 했다.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해파리 새의 부리엔 납작한 타원형 총이 물려 있었다. 한스 선생님이 나보고 이걸 갖고 나무 위로 올라가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이제서 그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지고 있었지만, 더 이상 내 마음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나와는 다른 편이 되었는데도 왜 나를 감쌀까? 선악의 구별을 ‘자기편 논리’로 풀어야 하는 건 아닐까?
단순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역사의 흐름이었다. 풀리지 않는 숙제 같았다.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데도, 왜 그는 유독 약한 나를 보호하려고 하는 걸까? 이런 것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의 고개마저도 갸웃거리게 했다.
이유가 뭐든 간에 전쟁은 모든 걸 다 앗아가고 있었다. 전쟁에선 강하고 약한 것이 좀처럼 구별되지 않았다.
한스 선생님은 멀리서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우리를 둘러싼 새들은 화식조에게 거의 다 먹혀 버렸고, 이젠 우리도 그것에 먹힐 운명이었다.
수인이는 한스 선생님을 울먹이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녀에게 큰 소리로 주문했다.
“화식조의 등에 가온이를 안고 올라타! 바로 지금!”
그녀는 다른 방도가 없었는지, 그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수인이와 한스 선생님, 그들은 이미 절친한 사이였던 것이다. 아니면……. 이것까지 생각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위태로웠다.
화식조는 어렵사리 자신의 등 위에 올라탄 수인이와 나를 이리저리 흔들며 떨어뜨리려고 했다. 상황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못하고 더욱더 긴박해져만 갔다. 가까이서 땅 아래에 떨어진 날개 달린 사람들과 새들을 잡아먹고 있던 또 다른 화식조가 우리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것은 한 치도 망설임 없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스 선생님은 죽어가고 있는 나에게 외쳐댔다.
“내가 가르쳐준 마법의 주문을 외워!”
정신이 몽롱한 나는 그가 다급히 말하고 있는 주문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찾아내야만 했다.
“내가 너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어서 실패했었던 그 주문 말이야! 선악을 구분하는 머리로는 새를 이해 못 한다고 했지! 화식조에게 약한 걸 보호해달라고 부탁해. 마법이 통할 거야!”
“빨리 어서! 자, 마지막이야. 가온! 정신 차려!”
나는 그때서야 감고 있던 눈을 서서히 떴다.
“수인아, 내가 아직 살아있는 거니?”
나는 꿈꾸는 것처럼, 몽롱했다.
“응.”
그 순간 화식조가 수인이의 날개 한쪽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긁어버리려고 달려들었다. 다행히 수인이가 그걸 재빠르게 눈치 채고 피해버린 바람에 화식조의 공격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수인이 자신도 죽음이 두려웠는지 숨을 여러 번 헐떡였다.
“가온! 한스 선생이 말하는 게 대체 뭐야?”
“음, 마법! 그래 마지막이다…….”
나는 눈을 감고 화식조에게 나의 애절한 영혼을 불어넣듯이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사…크리 사야 사크리 사야…!”
화식조가 갑자기 움찔거렸다. 한스 선생님도 멀리서 느꼈나 보다.
“가온! 다시 한 번만 해봐! 어서!”
나도 화식조의 널찍한 등 핏줄이 굵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피의 흐름이 거세게 빨라지는 느낌이었다.
“사크리 사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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