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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36]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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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6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무 꼭대기에서 정체불명의 반나체의 한 사내가 땅 아래를 향해 급속히 떨어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땅 아래로 바람이 일고 있는, 그쪽으로 내 머리와 눈이 돌아갔다.

 자살인가? 아깝고도 슬픈 목숨이었다. 이런 섣부른 판단도 잠시뿐이었다. 갑작스럽게 그의 어깨 양쪽에서 날개가 쭉 펴지더니, 잔잔한 바람을 몰아 일으키면서 날아올랐다.

 그는…… 날개 달린 사람이었다! 한스 선생님의 말은 거짓이 아닌…… 틀림없는 사실이었던 거다.

 그런데 그 날개 달린 사람이 정말 무시무시하게 칼처럼 예리한 날개를 휘저으며 우리를 향해 날아 내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우와! 정말 어깨에 날개 달린 사람이 있다니……

 나는 그 신비스런 광경에 그만 넋이 나가버렸다. 중요한 순간에 너무 떨린 나머지, 찾아오는 정신착란 증세 같았다.

 “정신 차려, 가온! 조심해! 내가 준 총으로 방어하라고. 알겠지?”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무서워요!”

 나는 너무 떨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고, 소리만 질러댈 뿐이었다. 한스 선생님은 그 순간에도 날개 달린 사람을 향해 맞서며, 내 어깨를 감쌌지만, 왠지 그가 불쌍하고, 어색해만 보였다. 그가 날 보호해줄지도 의문이었다.

 예전에는 못 느꼈던 그의 다리의 불편함이 이제야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는 날개 달린 사람들의 거센 공격을 받은 후유증으로 항상 엉거주춤 서 있던 거였다. 이제야 그의 말들이 조금씩 사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날개 달린 사람들이 굶주린 매가 먹잇감을 찾듯 우리 머리 위를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러더니 돌연 내가 아닌 한스 선생님을 향해, 그것의 날카로운 날개로 그의 목을 베려는 듯이 돌진했다. 그것들은 나 같은 애송이를 노려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쉽게 간파한 모양이었다. 한스 선생님은 총의 버튼을 이리저리 찾으며, 서둘렀다. 그도 숨을 죽여 가며 긴장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설마 그걸 못 찾는 건 아니겠지?’

 그는 어렵사리 버튼을 찾았나 보다. 그는 자신을 덮쳐 오는 날개 달린 사람을 향해 힘껏 버튼을 누르는 것 같았다. 그 날개 달린 사람은 눈에 불빛을 정통으로 맞았는지, 그의 바로 눈앞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명중이야, 명중!”

 나는 펄쩍 뛰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너무 긴장된 순간이었다. 그와 나는 숨을 헐떡이듯이 심호흡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 참이었다.

 나무 중간쯤부터 날개 달린 사람들, 수십 마리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서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우리를 향해 또다시 돌진해 오는 게 아닌가! 화가 잔뜩 난 듯싶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기겁하고 말았다.

 “저 죽을 것만 같아요! 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

 “늦었네, 미안하군.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내가 했던 것처럼 타원형 총구를, 새의 눈을 향하게 하고 버튼을 힘껏 눌러! 알겠나? 노란색 버튼을 잊지 말고!”

 나는 꿀 벙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대답 좀 하라니까!”

 “……! 알겠어요.”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날개 달린 사람들! 여린 소녀들처럼 곱상한 얼굴들도 간혹 눈에 띄었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존재들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봤던 새들처럼 하늘 위를 빙글빙글 돌더니, 서너 마리가 쏜살처럼 이젠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게 아닌가!

 나는 한스 선생님의 말만 기억했다. 총의 버튼을 연이어 눌러 댈 수밖에 없었다.

 날개 달린 사람들은 날개에 맞았는지 조금 놀라는 기색만 보였다. 그러더니 나에게 또 다시 확 달려들었다. 나는 죽기 살기로 총의 버튼을 여러 번 눌러댔다. 한번은 정확히 눈을 관통한 것 같았다. 한 마리 새, 아니 날개 달린 사람이 힘없이 날개를 접고 내 앞에 떨어졌다.

 “우와, 재밌다!”

 나는 감정의 기복이 심했고, 공원에 놀온 것처럼 환호성을 연거푸 울렸다.

 “정신 차리라고 했지! 이건 장난이 아니라고! 죽을 수도 있어!”

 그는 집중할 것을 강하게 재차 요구했다. 날개 달린 사람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나 보다. 이번엔 그는 가만히 내버려둔 채, 수십여 마리가 나를 향해 공격해 왔다. 그도 옆에서 잔뜩 긴장한 나를 도와주려고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내 코앞에서 새들이 툭툭 떨어져 나갔다. 그가 거의 다 맞춘 거였다. 어느새 공중에는 수십 마리가 아닌 수백 마리의 날개 달린 사람들이 큰 동심원을 그리며 돌더니, 떼거로 나를 향해 공격해 왔다. 그도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나에게 명령했다.

 “나무에 올라타! 수가 너무 많아. 서둘러! 나무에 오르자마자 누런 버섯으로 뒤덮인 일 층 문으로 들어가!”

 “, 알겠어요!”

 나는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뛰려 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달려든 날개 달린 사람의 예리한 날개 부분이 나의 어깨를 비어버렸다. 피가 흘러내렸다.

 두서 마리, 아니 두세 사람이 내 피를 보고는 거칠게 나에게 달려들더니, 나의 웃옷을 확 찢어버렸다. 한스 선생님도 어쩔 수 없었는지 공격도 못한 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도 별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죽는 거구나. 그래도아빠의 얼굴을 보게 되니까……

 난 이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려 했다. 나의 지나간 짧은 삶들이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그 날개 달린 사람들이 나의 겨드랑이 쪽을 우연히 본 것 같았다. 그것들은 파랗게 질려 더 이상 나를 공격하는 것도 잊은 채, 도망가듯 나무 위로 날아가 버리는 게 아닌가.

 그때 공중에서 날던 날개 달린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다시 공격하려는 순간, 멀리서 사람의 목소리, 아니 한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격하지 마. 그는 내 친구야!”

 ‘그라니? 나를 말하는 건가?’

 나는 얼굴을 들어 나무 위를 무심코 쳐다보았다.

 ‘에메랄드빛 날개의 광채! 그녀는 수인이의 언니, 실오라기 천도 하나 걸치지 않은 실비아가 아닌가! 설마 내 목에 독을 뿜은 게 실비아? 아니야, 꿈이야. 꿈이어야 해!’

 나를 공격하던 날개 달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뒤로 물러나더니, 나무속으로 사라졌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나는 비틀거리며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켰다.

 “실비아! 실비아 너 맞지? 수인이는 어디 있어?”

 나는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실비아는 머뭇거렸다.

 “대답하라고! 네 동생 수인이가 어디 있냐고? 네 동생이 내 아빠를 죽인 거 맞아? 직접 보고 물어봐야겠어!”

 대답이 없자, 나는 신경질 나는 투로 여러 번 소리를 질러댔다. 그녀는 그냥 멀리서 나를 한두 번 쳐다보고는, 한스 선생님에게 뭔가를 진지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실비아, 가온이마저도 열정을 빼앗았구나. 나한테도 행한 그런 비슷한 수법이 통할 것 같나? 다시 충고하는데, 그만 좀 욕심을 버려. 질투의 여신이 다 되어 가는구나.”

 그의 말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는 실비아를 익히 알고 있었나 보다.

 ‘실비아가 질투의 여신이 되어 간다고? 여기에 공주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녀는 나에게 한 것처럼 그의 말을 무시하듯, 그를 힐긋 쳐다볼 뿐이었다. 심지어 가증스럽다는 듯이 그를 한두 차례 노려보기도 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없이 나무 위로 사라져버렸다. 한스 선생님은 나에게 급히 다가왔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넌지시 말을 던졌다.

 “다친 데는 없나?”

 “이게 다 뭐죠? 그들이 왜 나를 살려줬죠?”

 “그건 나도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네. 짐작만 갈 뿐이야.”

 그는 매사 이런 식이었다. 학자여서 그런지 한 치의 오차도 나지 않을 때, 그때 가서야 진실을 인정하곤 했다. 토론이나 학생들의 대학 입학시험도 그렇고, 매사 꼼꼼하다 보니, 거의 대부분이 그를 인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그의 모습이 왠지 날 비꼬는 것 같고, 나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어 폭발할 지경에 놓이게 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생각나는 대로 또 지껄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 가슴과 배가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실비아가 날개 달린 사람이라니…… 그녀가 날 일방적으로 짝사랑한 것뿐, 난 그녀의 친구가 아니란 말이에요.”

 내 말을 듣고는 한스 선생님은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지만, 그건 잠시일 뿐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어.”

 그가 내뱉은 짧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 뭐라고요? 실비아가 그러면…… 선생님에게도 사랑을? …… 그건 말도 안 돼요! 나이 차이가 무려……

 나는 당황한 나머지 더 이상 물어볼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실비아가 나에겐 사랑 따윈 주지 않았어. 오해가 생길까 봐 미리 말해 두겠네. 하지만…… 크리스 왕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서……. 자신이 타고난 재능보다 더 큰 것, 많은 것들을 원한다고.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지만, 거기에 만족 못하고 지식, 지혜, 열정, 온갖 것들을 다 가지려 하지. 그게 이런 비극을……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 왕들도 이런 의혹들을 피해 가지는 못할 걸세. 이젠 돌아가자. 그리고 수인이가 네 아빠를 죽였나? …… 아니다. 그만하자.”

 그는 알다가도 모를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는 위엄이 서려 있었지만, 하던 말들을 정확히 끝맺지도 않았다.

 “말씀을 드릴까 말까 고민했던 거……. 아빠 다락방에서 어렸을 때 수인이가 아빠를 죽이는 걸 환상으로 봤어요.”

 “첨단과학으로 범죄 조작도 가능한 세상이야. 그걸로 속단하기엔 너무 이르네.”

 “, 제 머리가 예전보다 더 복잡해졌어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해두자. 가자! 한시가 급해!”

 “아니, 선생님이 말을 길게 꺼내 놓고는그러면, 왜 날 살려준 거죠? 죽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리고 크리스 왕국의 비밀을 더 자세히 말해줘야죠!”

 “우선 여기를 벗어나자, 돌아가서 말해주겠네. 문서들과 총들을 잘 챙기고.”

 그가 답답해 왔던 여러 의구심들이 지금은 사라진 것일까? 아니, 내가 궁금했던 걸 어느 정도 알게 해줬다고 생각한 걸까? 나보다는 그가 더 홀가분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남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학자처럼 보였다. 그는 통로의 문을 열고는 빠르고 시원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조변림으로 안내해주었던 수십 마리의 새들이 통로 문 안쪽으로 날아 몰려들었다. 우리가 사다리로 내려가려 하니까, 우리 발밑에서 그것들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들의 퍼드덕거리는 날개 짓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이제야 안심이 됐다. 다행히도…… 나는 죽지 않고 살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맑은 혼이 나를 보호해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급작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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