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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35]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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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5

 

 한스 선생님과 나는 그렇게 한참을 갔다. 그는 가는 도중에 내가 지루하지 않도록 흥미 있는 질문들을 내놓고, 상세히 설명을 해줬다. 기독교의 신의 아들로 불리는 예수가 과연 문둥병 환자를 낫게 했을까, 등등의 질문들은 나를 미지의 고대 근동 시대로 안내했다. 그는 그 시대의 문둥병은 요즘과 달리 죄를 많이 지은 자들만이 걸리는 병으로 여겼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문둥병에 걸린 자들을 죄인으로 치부한 당시 사회를 현란하게 비판해 갔다. 그러고 나서 예수가 병을 낫게 했다기보다 문둥병 환자는 죄가 없다.’는 정결의식을 베풀었다는 역사적인 해석을 전해줬다. 그는 내가 그의 말을 듣고 나서 자료와 증거를 요구하거나 의아해할 때마다, 단지 학설일 뿐이라며, 가볍게 미소를 지어주곤 했다. 그가 조금씩 나에게 지혜를 심어주는 듯했다. 그의 말들은 그다지 신뢰할 수도 없었고, 가끔 반감도 생겼지만,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마음 편히 그의 지혜를 듣는 시간도 서서히 사라지는 듯했다. 시간은 정처 없이 흘러갔고, 지하 천장 위 가느다란 틈새에서 태양 빛이 우리를 따갑게 비추고 있을 때는, 그곳이 밖으로 나갈 문의 틈에서 새어 나오는 빛줄기라는 것을 쉽게 직감할 수 있었다.

 한스 선생님은 그 위를 가리키며, 조변림에 다 왔다는 신호를 엄지와 검지를 교차시켜 나와 새들에게 보내줬다. 어김없이 땅 위로 올라가는 긴 사다리가 멀찌감치 구비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어림잡아 이 사다리의 길이도 지하통로로 내려가게 되어 있던 사다리와 거의 같은 길이.

 ‘이 모든 걸 다 한스 선생님이 계획하여 만든 걸까? 이런 세밀한 구상을 그 혼자 했을까?’

 이를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들은 우리가 사다리 끝까지 다 올라가는 걸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그제야 안심이 됐는지 사다리에 오르는 우리 발밑을 여러 차례 돌더니, 어디론가 뿔뿔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사다리 끝까지 올라가서야 거의 동시에 긴 한숨을 내몰아 쉬었다. 긴장된 순간이 조만간 찾아올 거라는 숨 고르기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그도 인간인지라, 나처럼 긴장이 안 될 수는 없을 듯싶었다. 나는 막상 여기까지 오니, 되돌아가고 싶어졌다. 심지어 아버지처럼 날개 달린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는 담담하게 또 한 번 긴 한숨을 내쉬더니, 문을 열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순간까지 온 것 같았다. 눈부실 정도로 환한 태양 빛이 지하통로 안으로 쏟아져 내려왔다. 눈부실 정도였다.

 우리가 도착한 여……기는 에메랄드 숲처럼 보였다. 그것도 깊은 숲 속일 듯싶었다. 여기에서 연인들이 고요하게 입맞춤하는 소리들이 들린다는 그곳!’

 그런데 분위기는 엇비슷한데도 뭔가 달라 보였다.

 “이젠 어디로 가면 되죠? 저는 여기가 낯설지 않아요.”

 “여기를 안다는 말인가?”

 “, 친구들과 가끔 온 데에요.”

 “그런가? 너희들이 여기를?”

 “여기가 조변림 아닌가요?”

 “…… 네가 그러면 그렇지!”

 그는 조롱 섞인 웃음을 지으며, 나를 무시하는 듯했다. 내가 엄연히 여기 토박이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왠지 좀 낯설어 보였다. 뭔가가 앞을 턱 하니 막아버린 것 같았고, 라임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가 날 무시하는 투로 큭큭거리며 소리 내어 웃어댔지만, 나의 뾰로통한 얼굴을 보고 나서는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그는 억지로 웃음을 멈추고 냉정한 얼굴을 하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 지금부턴 진지해 보자. 서두르지 말고. 그리고 잃은 물건은 없는지 챙겨보자.”

 그는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납작한 타원형 총 두 개는 갖고 있겠지?”

 “, 여기 있어요.”

 “거기에 보면 튼튼한 가죽 벨트가 있어. 그걸 시계 차듯이 손목에 착용해 보게나.”

 나는 그의 말들을 일일이 놓치지 않고 꼼꼼히 챙기려 노력했다.

 “선생님의 달걀형, 아니 타원형 총은 어디 있나요?”

 나는 그가 말하는 용어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서로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였다. 하나 서로 소통이 안 될 땐 분명히 참혹한 비극이 찾아올 것만 같았다.

 “난 바지 앞 호주머니에 늘 갖고 다니지.”

 “, 나무도 잘 타시겠네요?”

 “하루에 한두 시간은 연습한단다.”

 “, 이제 보니 선생님의 엉덩이가 원숭이처럼 생기셨네요?”

 “뭐라고? 너 어쩌자는 거야!”

 나도 그처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은 채, 소심한 복수를 하듯 킬킬 웃어버렸다.

 “그래. 우리 이 정도로 해두자.”

 “! 그렇게 하옵죠. 아차, 근데 문서들은 어디 있는 거죠? 오다가 흘린 건 아닌가요?”

 “너 바보지? 네가 지금 들고 있잖아!”

 “휴우, 죄송해요.”

 사실 긴장하고 있는 건 한스 선생님이 아니라, 바로 나였던 것이다. 다시 통로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 새들의 서식지가 어디 있는지 알려면, 이 부분을 봐야 해. 이걸 읽어보렴.”

 그는 자상하게 새들의 서식지의 문서를 펴 주면서 읽을 부분을 짚어 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큰 소리 내어 읽었다.

 “……날개 달린 사람들은 조변림 주변에 위치한…… 높이가 100미터 크기의 나무에서 산다. 나무의 지름도 거의 높이의 절반만한 초대형 나무…… 조변림 한가운데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지만, 쉽게 육안으로 발견하기 어렵다.”

 “허허, 또박또박 잘 읽는군.”

 그는 내가 읽는 모습이 흡족했는지 아까하고는 상이한 평가로 입 마를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야, 이거 상세하게 적혀 있네요? 수인이가 말한 곳과 비슷하네.”

 “, 뭐라고 했지? 인이?”

 그는 깜짝 놀라 했다.

 “, 수인이요. 선생님도 수인이를 아시나요?”

 “아아, 그냥. 우리 학교 학생이잖아. 수인이가 네 친군가?”

 “아주 가까운 친구죠! ……아니에요.”

 “여자친구? ……그런가 보네…… 계속 읽어보렴.”

 그는 마치 수인이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어물쩍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와 수인이와의 관계는 비밀이다 보니, 더 이상의 말들을 그에게 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 수인이를 못 본 지 반년이 흘러가는 구나……

 나는 여러 생각이 교차하면서 엉킨 실타래처럼 머릿속이 뒤죽박죽 하다못해 하얗게 시커멓게 되더니, 나도 모르게 멍해졌다. 그가 말하는 게 들려오지 않았다. 뇌신경이 마비된 것만 같았다.

 “계속 읽어보라니까?”

 그는 내가 딴청 부린다고 생각했나 보다.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순간인데……. 나는 어떻게든 버텨야 했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습관처럼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집중해서 읽었다.

 “……이유는…… 나무 위는 잔디가 무성한 언덕 모양으로 평지와 붙어 있다. 그래서 밖에서 보면 마치 나무는 보이지 않고 언덕 정도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날개 달린 사람들, 즉 새들의 서식지는 발견하기 어렵지만, 특이하게도 이들의 서식지 위에는 40여 미터 높이의 나무가 또 있다. …… 날개 달린 사람들은 왕족과 평민으로 크게 나뉘는데, 그들 모두 언덕의 평지를 뚫고 들어가야 한다. 평민들은 나무속에서 층별로 살고, 왕족은 평지를 뚫고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왕궁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산다.”

 어딜 가든 노예와 귀족,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이 있나 싶었다. 이기적이며, 불쌍한 인간들…… 같은 종족끼리 서열을 만들어 억압하고 지배하고…… 그렇게 하고 싶을까?

어딜가나 지배와 피지배, 강자와 약자는 존재하는 건가

 그런데…… 이와 중에도 문득 수인이가 떠올랐다.

 이곳은 진짜 그녀의 집 위치와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쏟아지려 했다.

 “뭐해? 이 부분도 읽어보라니까.”

 그는 이리저리 책장을 넘기더니, 읽을 곳을 찾아줬다. 나는 진정하려 했다. 남자가 되어서 강한 척도 하지 못할망정 이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 알겠어요. 그러면 우리가 평지를 어떻게 뚫고 들어가요?”

 “, 그러니까 이거 읽어보라니까!”

 그는 내가 답답했나 보다. 가끔은 그가 영웅인 양 자기도취에 빠져 잘난 체하는 학자 정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 목숨을 위해서라도 그의 말을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 문서를 자세히 보기 위해 내 쪽으로 좀 더 끌어당겼다.

 “날개 달린 사람들만이 평지를 뚫고 들어갈 수 있다. 그들의 날개는 금방 간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제기랄, 그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나는 놀랍기도 했지만, 우리가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허탈했다. 만일 들어간다 해도 그들의 날개에 목이 잘릴 수도 있지 않은가.

 “선생님,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건 안 되나요?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잖아요. 난 죽고 싶지 않은데……

 “웃기는 군, 자네가 오자고 했어!”

 “오자고 했다기보다는, 그냥 궁금하다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난 비겁자 같았다.

 “네 아빠를 기억하렴.”

 “, 아빠…….”

 그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결국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내 오른손으로 눈물을 겨우 훔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음부턴 아빠 얘기 꺼내시면……

 “알았네. 미안하네. 그러면, 에라…… 그냥 돌아갈까?”

 나는 그의 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또다시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수인이와 모키, 교장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이들의 모습이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생사도 알길 없는 수인이, 어머니의 행방……모키와 교장, 킴란스 기자, 아버지의 의문사…… 이것들을 알아내야만 했던 것이다. 없는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설마 죽겠어요? 좋아요. 평지를 뚫을 건가요?”

 “어허, 너의 용기가 대단하군.”

 “으이그, 빨리 좀 얘기해줘요. 마음 변하기 전에요.”

 나는 조바심을 냈다.

 “좋아, 그런데 네가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가 이미 평지를 뚫고 들어온 거라고.”

 “? 거짓말하지 마세요! 우리는 지하에서 올라왔고, 날개 달린 사람들만이 뚫는다고 하잖아요.”

 나는 더 이상 그의 황당한 말들을 믿기 어려웠다.

 “자네, 똑바로 서보게. 그리고 앞을 보라고. 위도 보고.”

 나도 모르게 뒤로 움찔 물러섰다. 내 앞에는 엄청 큰 나무가 떡하니 있어서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슨 큰 절벽이 내 앞을 막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에 복종하듯, 위도 쳐다봤다.

 하늘 대신에 초록색 빛의 나뭇잎과 풀이 우거져 하늘을 막고 있었다. 그 나뭇잎과 풀 사이로 태양 빛이 스며들어 온 천지가 초록빛으로 가득 차 있는 거였다! 오늘이 봄 문턱에 들어선 춘분인데, 이곳은 바깥세상과 달리 일찌감치 녹음이 꽤 짙고 공기도 그리 차갑지도 않다니, 놀라웠다.

 이곳 토박이인 나조차도 발견하지 못한 새들의 서식지!

 한스 선생님은 날개 달린 사람들처럼 언덕의 평지를 뚫지 않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새들의 서식지 바로 그 아래로 들어온 것이다. 바닥을 뚫은 것이다!

 그가 어떻게 알아낸 거지? 설마, 그가 날개 달린 사람? 아니면 그들의 첩보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문서의 다른 부분을 읽으려고 페이지를 이리저리 넘겨댔다. 그 순간 갑자기 그가 책을 아챘다.

 

 

 “지금은 내가 읽어보라는 데만 읽어!”

 “네 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내 말 들으라고 했지! 지금은 살기 위해선 여느 때보다 집중이 더 필요하다고!”

 “, 알겠어요.”

 나는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되고 있었다. 도저히 침범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갈수록 그는 감추려는 비밀이 많아 보였다. 그가 의심스러웠다. 나는 문득 그가 날개 달린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 한번 확인해 보자. 한스 선생이 날개가 있는지 확인해보자고.’

 나는 그를 속이는 작전에 돌입했다. 작전이라고 말하기엔 즉흥적이고 다소 어설프지만 말이다. 내가 특전사 출신도 아니고…….

 “선생님, 그런데요…….”

 “? 뭐가 또 불만인가?”

 나는 그에게 가까이 가서 뭔가를 물어보는 척하면서, 내 몸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호신용 칼로 그의 웃옷을 확 찢었다.

 “! , 왜 그래!”

 그는 이젠 더 이상 놀라는 기색도 없어 보였다. 살짝 찢어진 그의 웃옷 사이로 누렇고 까무잡잡한 속살만 보일 뿐이었다.

 “아니, 저는 그냥…….”

 “너 아직 날 믿지 못하는군.”

 그는 심리술사처럼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다.

 “선생님이 날개 달린 미치광이일 수도 있잖아요!”

 “……너의 소원이 그렇다면…… 보여주겠네.”

 그는 나의 호신용 칼을 강제로 뺐더니, 자신의 바지 한쪽을 쭉 찢어버리는 게 아닌가.

 “으아아!”

 이번에는 정말 내가 소스라치게 까무러칠 뻔했다. 그의 왼쪽 다리는 털이 무성 난 누런 살 대신에 은은한 강철과 볼트 너트로 이뤄진 인조 다리였던 것이다!

 “놀랍나? 너의 아빠처럼 나도 날개 달린 사람들의 공격을 받고 죽을 뻔했다고.”

 그는 이어 음성을 높이며 강조하듯 느릿느릿한 어투로 말했다.

 “다리 한쪽을 잃고 피가 엄청 흘렀는데…… 그때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든 것 같기도 하고. 눈을 떠보니, 다행히 운 좋게도 어느 한 병원에 누워있었지. 내 옆엔 한 여학생이 있었고. 난 분명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 몇 년을 잠도 자지 않아 가면서 날개 달린 사람들을 연구하게 됐어. 결국 내가 알게 된 사실은크리스 왕국의……

 “그런데요, 정말 날개 달린 사람들이 있긴 한가요? 전 본 적도 없고, 그것도 환상으로만 봤을 뿐이라고요. 지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무조건 아무 생각 없이 믿을 수만은……

 나에겐 육안으로 보이는 물질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구체적인 경험 없이 말로만 떠드는 형이상학을 액면 그대로 믿으라는 건 무당이나 주술사들이 선동하는 미신 종교와 같아 보였다. 관념주의의 대문호이며 철학자인 칸트나 피히테, 헤겔이 들으면 무지 서운해 하겠지만 말이다.

 가뜩이나 좁아 보이는 미간을 좁혀가며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던 그는 간단히 딱 잘라 말했다.

 “지금부턴 네 두 눈을 의심하지 않길 바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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