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3
“조금 전에 왜 날 찾아오게 됐다고 했지? 아빠 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아, 맞다.”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내 머리를 ‘톡’ 쳤다. 아마도 내 머릿속이 온통 이 신비로운 통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보니, 여러 걱정거리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거였다.
“조변림 사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고요, 또…… 선생님이 저의 아빠를 아실 것 같아서요.”
“조변림에 대해선 날 따라오면 되고. 근데 네 아빠를, 내가?”
“아빠도 한국국립대학에서 조류학을 전공하셨어요.”
“와아, 그래. 너랑 인연이 참 깊네. 너의 아빠의 성함이……?”
“김…… 찬…….”
“김찬휘?”
그는 내 대답이 차마 끝맺기도 전에 낚아채듯 말했다.
“네, ‘김찬휘’가 저의 아빠 함자예요.”
“……네가 그러면 찬휘의 아들 가온이라는 말이냐? 내 앞에선 어떤 술수도 통하지 않으니까, 똑바로 말해 보렴.”
그는 진지해졌다.
“네…… 제가 정말 가온이에요.”
그는 나의 아버지의 이름을 듣자마자 내 이름까지 기억해 낸 것이다. 그의 얼굴뿐 아니라 목덜미까지 시뻘게지더니,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냉정을 되찾으려는 듯이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한 번 더 묻겠네. 네 아빠가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했는데, 그건 다 나으셨고? 맞아, 항상 바지 주머니에 휴지를 잔뜩 들고 다니셨는데.”
“비염이요? 아빠는 선천적으로 위가 안 좋으셔서 칡즙을 드시거나 소식을 하셨을 뿐이에요. 코 땜에 고생하신 적은 없으셨다고요.”
그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내가 진짜 그의 아들인지 유도 심문하듯 떠본 모양이다.
이젠 모든 의문들이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젠 절 믿을 수 있겠어요?”
“암, 그래그래 믿고말고.”
“다행이네요. 근데 저도 아세요?”
“알다마다. 돌 때, 널 안아주기도 했지. 그리고 그날 저녁 만찬에도 네 집에 초대를 받았단다.”
그는 큰 숨을 내쉬며 말했다.
“세상에나, 정말이에요?”
그의 말대로 인연이 깊어 보였다. 서로 간에 말문이 순간 막혀버렸다. 얼른 화젯거리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선생님 때문에, 아빠가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내 말을 듣고는 그의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 듯했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삿대질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헛기침을 여러 번 해대며, 말을 어렵게 이어갔다.
“아, 그건 절대 아니란다. 그건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그는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를 꺼려하면서, 어머니의 말을 단호하게 뭉개버렸다.
‘그래, 경찰도 밝히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이 한스 선생님의 탓이라니……. 사실 말도 안 되는 엄마만의 생각 아닌가?’
나는 왠지 그의 말이 진실 돼 보였다. 그를 믿고 싶었다. 더 나아가 나의 마음까지 열고 싶었고, 내가 겪은 일들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 서재에 가봤다가 신비한 경험을 했어요.”
“그래, 혹시 벽 사방에서……”
그는 정말 많은 걸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선생님도 다 알고 계셨네요. 거기서 날개 달린 사람들을 영상, 아니…… 환상으로 봤어요.”
“그렇구나, 내가 예상한대로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건데, 너에게는 보이다니……”
“저는 무지 평범한데요.”
“가온아,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래요? 무슨 말씀인지……. 근데요, 날개 달린 사람들이나 새들은 왜 선생님을 공격하지 않죠?”
“공격은 하지. 하지만 날 쉽게 죽일 수는 없단다.”
“아니, 왜죠? 조변림 사건도 아시고 있잖아요. 그것도 아주 상세하게……”
“난 지혜가 있고……. 넌 크리스 왕국이라고 들어봤나? 난 그의 후손……”
“크리스 왕국이요? 후손? 세계 역사, 아니 야사인가요?”
“그건…… 아직 모르나 보네. 나중에 말해줘야겠군.”
“무슨 말씀이시죠? 제발 좀 가르쳐 주세요! 제발요.”
나는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의 어머니한테 대하듯 보채고 말았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아, 그래 말해주지. 너도 이젠 알 때가 됐어. 그런데 그 전에 너에게 보여줄 게 있어. 수고스럽겠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가 봐야 하는데 괜찮겠나?”
“그럼요. 전 젊어서 체력이 넘치거든요.”
“그럼 난 늙었단 말이냐?”
나는 그의 말에 입을 가려가며, 새색시처럼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나에게 뭔가를 정확히 말해주기 위해서 조금 전에 지나온 길로 되돌아가는 그를 보니, 그 역시 호기심과 가르침의 열정이 남달라 보였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를 뒤따라 붙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보이지 않았던 지하 통로의 길들이 다시 새롭게 보였다. 나는 지하통로라서 그냥 상하수도 통로처럼 길바닥이 질퍽한 진흙 정도로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오물도 밟히고.
하지만 내 신발에는 흙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다. 놀랍게도 통로의 길은 하얀 대리석 바닥으로 이뤄져 있었다! 가끔 대리석 중간 중간에서 파스텔 색조의 별 모양 야광 빛도 흘러나왔다. 핑크빛이 감도는 양쪽 벽의 폭은 승용차 두 대가 좌우로 나란히 지나가기 충분할 정도로 넓었고, 의외로 고즈넉하기조차 했다. 이걸 전부 그가 만들었다는 건가?
나는 막대자석처럼 그를 더욱더 바싹 붙어 따라갔다. 아무리 지하 천장에 전등이 켜져 있더라도, 대략 이십여 미터마다 전등 한 개씩에만 불이 들어와 있어 조금은 어두웠고, 그에게서 초인 같은 힘을 느낀 데다 친근감도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마침내 가던 걸음을 멈추고, 큼직한 금고 앞에 멈춰 섰다. 금고의 문은 어른 키의 거의 두 배만 했다.
그는 금고의 비밀번호를 한쪽 손으로 가려가면서 차근차근 눌렀다. 내가 볼까 봐서…… 그런가 보다.
“쪼잔 하기는…… 비밀번호 보면 좀 어때서.”
“너, 뭐라고 했니?”
그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아니, 아……뇨.”
아차,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어휴, 내 주둥이가 말썽이야.’
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일부러 지하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 틈에 표정을 누그러뜨린 그는 문을 열려 했다. 엉겁결에 나는 그를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시늉을 했다. 그 문의 비밀번호를 훔쳐보려는 의도는 없었다. 단지 그를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문의 두께가 꽤 두꺼울 거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었다.
한스 선생님은 나와 함께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려 했지만,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 문은 자그마치 일 미터 두께에, 무게는 무려 백 킬로그램 정도 돼 보였다.
그런 시늉조차 내지 않았다면, 아마 예의 없는 학생으로 낙인찍힐 만했다. 그 금고는 내가 상상했던 거보다 훨씬 더 무겁고 거대했던 것이다.
마침내 굳게 닫혀져 있던 그 문이 서서히 열리고, 금고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 속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즐비해 있었다. 책들도 여러 권이 있었고, 나팔, 권총, 장총과 긴 칼도 보였다. 심지어 한 여인의 가슴을 두드러지게 강조한 누드 상과 함께, 새들의 박제까지 눈에 띄었다.
그는 누드 상 허리춤 바로 밑을 이리저리 헤집었다. 그러더니 그쪽에 바짝 붙어있는 선반에서 책처럼 엮은 두툼한 낡은 문서 두 뭉치와 한 손 안에 쥐어질 만한 납작한 달걀형 모양의 플라스틱 장난감 두 개를 꺼냈다. 그러고는 아쉽게도 큼직한 금고의 문은 굳게 닫히고 말았다. 내 눈엔 그저 애들 장난감 정도로 보이는 것들을, 그는 자신이 오랜 노력 끝에 만들어낸 지능형 로봇이라며, 어린아이처럼 으스댔다. 심지어 신비스런 얘기도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예전에 마법을 배워보려고, 여러 마법학교를 전전해가며 배워봤지만 다 허사였어.”
“마법이요?”
나는 그가 정말 신기해 보일 정도였다. 눈속임하는 마술도 아니고 마법이라니…….
“나는 어쩔 수 없는 과학자인 거였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마법의 세계가 의심스러워 집중이 안 됐지. 자신만의 이익이나 소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만을 챙기듯이 마법을 부리면, 마법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진심 어린 애정으로 영혼에 호소를 해야 해. 난 애써봤지만, 순수성이 부족한가 봐. 난 도움을 받지 않으면, 먼저 도움 주는 게 잘 안 되거든.”
그는 여러 재능이 있어 보였다. 마법사의 기질도 있을 법했지만, 스스로 그 재능을 억누르는 듯했다.
“내가 배웠던 마법을 하나 소개해줄까?”
“네? 마법을요?”
나는 호기심에 호들갑을 떨었다.
“좋아. 싫지는 않은 가보군.”
그는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어갔다.
“사크리 사야……. 이 주문을 반복해. 그런데 중요한 건, 주문을 건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켜야 해. 아니, 영혼까지 그 감동이 스며들어야 하는 거지.”
그는 열성적으로 설명해줬다. 그가 대단해 보였지만, 그의 마법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뿐이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장난감 모양의 지능형 로봇 두 개를 위엄 있고 승리감에 도취되듯 검지를 바짝 세워 가리켰다.
“이 발명품은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무기일세.”
“무기요?”
나는 이 말만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응, 무기. 무섭나?”
“네…… 좀…… 무섭다기보다는 제가 폭력이나 살생은 워낙 싫어하는 터라…….”
그는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걸 이해했다는 학자들만의 특유하고 관대한 몸짓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는 내 대답이 부족한 게 많았는지, 여러 말들을 이어갔다.
“그럼, 지식은 어떤가? 무섭나?”
나는 말도 안 되는 그의 질문에 애써 생각을 굴리는 걸 귀찮아하듯 피식 웃고 말았다.
“지식이 무섭다니요? 지식을 쌓으면, 원하는 대학도 가고, 출세도 할 것 같고요. 나름대로 유용하잖아요.”
“그래, 그렇긴 하지. 하지만 총 갖고 있는 군인과 지식이 많은 학자가 겨루면, 학자가 이기나?”
마치 그는 날 어린애 취급하면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시험하는 듯했다. 기분은 상했지만, 침착하려 노력했다. 그의 묻는 말에 되레 화내거나 짜증내면, 속 좁은 계집애처럼 보일까 봐서 그랬다.
“그야 당연히 군인이 이기지만요…… 학자가 힘 있고 멋지잖아요.”
그는 내 말을 듣고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또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핀잔을 늘어놓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학자가 힘이 있어? 멋지다고? 그건 중고등학생 때나 그렇게 생각하지. 대학교수도 선생이고, 선생은 지식을 전달하는 월급쟁이일 뿐이야. 교수들이 고고한 척이라도 하면, 어린 학생이나 뭘 모르는 사람들은 그 앞에서 목을 조아리는 바보가 된다니까. 그들을 바라보는 교수들의 마음속은 어떨까? 교수들은 칼이나 총도 없고, 돈도 많지 않은데 말이야. 아직은 네가 경험이 적어서 그렇게 판단한 거라고 이해해 두겠네. 혹시, 로스차일드 가문이라고 아나?”
그는 강의하듯 긴 호흡으로 드문드문 질문도 섞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로스차일드 가문이요? 알아요. 부자 가문?”
그는 이제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찬휘의 아들답군. 흔히 유대자본이라고 하는데, 중세기를 거쳐 현대사의 금융 중심에 자리를 잡아 세계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로스차일드……. 철강엔 카네기, 철도 해리먼, 석유산업엔 록펠러…… 돈줄인 제이 피 모건(J. P. Morgan)…… 골드만 삭스…… 더 듣고 싶나?”
“……네. 제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나는 그가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진지한 얼굴 표정이 나를 압도하고 있었고, 그의 말에는 강한 무게감마저 느껴졌다.
“너도 나처럼 호기심이 강한가 보군. 이들 부자들이 연방준비은행, 국제통화기금, 국제결제은행을 창설하고, 급기야 UN 국제연합이라는 세계정부도 탄생시켰지. 국제사법재판소까지도 말이야. 학자들은 이들이 세상을 더 잘 원활히 지배하도록 억지로 이론을 끼어 맞춰주고, 도와주지. 고전적인 사회, 정치, 경제 이론과 논리를 들먹거리면서……. 제일 나약한 게 학자들이라니까.”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논리적인 비약이 심한 억측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술을 앞으로 툭 내밀고는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진짜요? 참나, 원……. 그건 말도 안 돼요. 부자들이 뭐가 아쉬워서 국제기구에까지 손을 뻗치나요? 그건 국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동의해서 만든 세계적인 협의기구예요. 그리고…… 소신이 강한 학자가 더 많다고요! 선생님도 학자 출신이시잖아요!”
그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너무 침착할 정도로 말을 계속 이어갔다.
“가온군 진정하게. 꼭 내 말만 옳다는 건 아닐세. 난 지식 위에 돈이 있다는 걸 예시로 들고 싶었을 뿐이네. 이해하나?”
그는 자신의 완고한 주장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느낌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다시 침착하려 노력했다.
“좋아요. 그럼, 만일 선생님의 말씀이 옳다면요, 세상은 너무 서글픕니다. 돈으로 평화까지 만들 수 있다니 말이에요. 그리고 세계의 모든 정치인들, 정책을 만드는……맞다. 이들을 정책결정자들이라고 하죠? 이들은 부자들의 말을 무조건 무시할 수도 없게 될 테니까요. 저의 집도 가난하지만, 부잣집 애들한테 기죽지 않으려고……”
“오! 내 말을 그래도 이해했나 보군. 하지만 그들도 무서워하는 게 있단다.”
“네? 그게 뭐죠? 너무 궁금해요, 선생님.”
나는 점점 그의 대화법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게 바로……무기란다. 세계의 독재자, 희대의 살인마라고 불리는 히틀러. 그는 고리대금업으로 국민들의 피를 빨아먹었던 유대인을 살생무기로 대거 학살했지. 돈을 빌려주고, 한 마디로 ‘이자’로 배를 불리던 그들을 무기로 제압한 거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역사적인 평가는 냉정했지. 현대 지식인들은 돈이 없다 보니, 아니 돈이 무서웠는지 히틀러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는 건 접어두고 살인마라고 몰아가기 바빴지 뭐야. 8억 5천만 달러나 하는 미사일 같은 무기. 한국 돈으로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고 있나? 계산하지 말게. 속 뒤집어지지. 이 돈이면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공짜로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싶네. 또 말이 다른 곳으로 새어버렸군. 미안하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는 그의 말에 맞장구라도 쳐주고 싶었다. 그러고는 그를 지그시 쳐다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고맙네. 아무튼 부자들도 무기를 각국에 팔아서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만, 정작 핵무기나 미사일 앞에서는 꼼짝도 못한다고. 고대 시대 알렉산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 장군들도 결국 무기로 세상을 독차지하려 했어.”
나는 그의 말들을 듣고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다. 아까만 해도 괜찮았는데.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아악…… 전 여태까지 돈도 아니고 무기도 아닌 학식이 많은 조류학자가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줄 알았단 말이에요!”
“다시 말하겠네, 진정하게! 내 말은 단지 학설뿐이라고 여겨주게. 조류학자들에게도 내가 보여준 지능형 로봇 같은 이 정도 무기는 필수야. 새를 연구하려다가 식인 새라도 덮치는 날엔…….”
그는 내 반응이 미미하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설명하던 것을 이어갔다.
“자네가 내 말을 듣고는 세상이 달리 보인 모양이군. 언젠가는 자네도 깨달을 걸세. 하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하자구나. 본론으로 넘어가 보세. 장난감처럼 생긴 이 무기는…… 새들이 공격해 올 때, 옆쪽에 있는 두 개 버튼 중에 위쪽의 노란 색 버튼을 누르면 강력한 빛을 발사시킨단다. 이 빛으로 새의 눈을 잠시 멀게 해서 떨어지게 하는 도구지. 말하자면 총인 셈이야. 우리의 음성도 알아듣지. 하지만 절대 새를 죽이지는 않는단다. 또 있다면, 사람의 눈에 아무리 발사해도 아무 효과가 없어. 새의 눈만 멀게 되도록 만든 거야.”
그는 자신이 만든 물건을 쉽고 상세하게 설명하려 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나무에 올라가게 될 때는, 옆에 있는 아래쪽의 빨간 색 버튼을 누르면, 나무에 딱 달라붙어. 버튼을 두 번 누르면 떨어지고……. 연습을 많이 해보게. 이런 식으로 하면 분명 큰 나무라도 쉽게 오를 수 있을 걸세.”
한마디로 이 무기는 우리 집의 만능열쇠처럼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의 설명을 정확히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는 질문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요, 그걸로 빛을 발사해서…… 새가 맞는다 해도 죽지 않는다고요? 저도 새가 피 흘리며 죽는 건 질색이에요.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싶지도 않고요.”
“응, 나도 마찬가지야. 새는 절대 죽지 않아. 직접 새의 눈을 향해 쏘아야 하고, 다른 부위에 쏴봤자 새는 아파하지도 않아. 자극은 조금 받겠지만……. 소용없는 거지. 새의 눈을 정통으로 맞춰도 잠시 눈이 멀게 될 뿐, 이삼십 분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단다.”
그의 설명은 나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 정도로 상쾌했다. 하지만 이젠 장난감 같은 무기도 더 이상 나의 궁금증을 유발시킬 수 없었다. 그의 상세한 설명 덕분에, 마치 그 무기가 나의 몸 일부가 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사실 공학적인 관심보다는, 그가 설명해준 로스차일드 가문 같은 사회경제적인 현상들이나 인문 사회, 그리고 순수과학인 생물학에 더 나의 이목이 끌리는 편이었다.
이번에는 제법 두툼해 보이는 두 권의 책, 엄밀히 말하면 서류 뭉치처럼 보이는 문서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 책, 아니 이 문서들은 뭔가요?”
“급하기도 하군.”
“죄송해요. 전 궁금한 건 못 참는 성미라서요.”
“알았네, 이 문서 내용의 모든 게 다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이제부터 내가 확인해 주려는 걸세.”
“근데요, 문서 제목이, 아…… 새들의 서식지이네요?”
너무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새들의 서식지! 아빠 서재에 있었던 그 책이었다.
“이건 책으로도 출간됐지. 넌 이미 봤나 보군?”
“조금이요. 또 다른 문서는……요?”
“네가 알고 싶어 하는 ‘크리스 왕국’이지.”
그런데 크리스 왕국의 저자가 바로 한스 선생님이었다. 문서 표지에 명확하게 ‘존 샤인트 K. 한스’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그의 재능은 이미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졌지만, 이젠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나의 의중을 꿰뚫어본 것처럼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기독교의 성경은 누구의 관점으로 씌었다고 생각하나?”
“……신의 관점 아닌가요?”
“그래? 이스라엘인들의 선민 관점은 아니고? 이건 종교적인 시비가 있을 수 있으니, 그냥 넘어가 보겠네. 이 문서 ‘새들의 서식지’는 말이야……새들의 관점으로 씌었다면, 내가 쓴 ‘크리스 왕국’은 철저히 인간 중심의 관점이지. 두 문서들을 다 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
그는 말 그대로 학자였던 것이다. 책이나 사물 혹은 역사는 누구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말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그의 지식을 전부 이해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해 보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나?”
그는 내가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마다, 나의 빈틈을 지적하듯이 말을 걸어왔다.
“아……아니에요. 그냥 내 자신이 한심한 것 같기도…… 근데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나요?”
나는 구부린 등줄기를 꼿꼿이 세우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정신 좀 차리게. 이제부턴 정신 줄을 놓고 있으면 큰일 날 수도 있네. 긴장하게…… 자, 이제 이 책들의 내용을 확인하러…… 가자!”
그는 그답지 않게 조용히 말하다가 돌연히 외치듯이 음높이를 바꿨다. 나도 따라 하려 했지만, 어색해서 얼버무렸다.
그는 나와 다르게 의지를 다지듯이 또 입을 크게 열었다. 이때만큼은 마치 호령으로 대군을 이끄는 총사령관 같았다.
“얼른 이 통로를 빠져나가, 조변림으로!”
마치 고함 소리와 흡사했다. 그러더니 그는 손가락 두 개를 입안으로 가져갔다.
“삐리 삐리릭…”
그는 휘파람을 요란하게 불어댔다. 그 순간은 그가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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