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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28]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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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8

 

 “밤늦게까지 또 어딜 싸돌아다니는 거야!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화를 냈다. 요즘 일상은 늘 이렇게 시작되고 있던 거였다.

 밤늦게 몇 시에 들어왔는지, 전화기는 왜 산산조각 났는지, 어머니가 마치 강력범을 다루는 형사처럼 나를 추궁했다. 나의 심장 근육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정신없었다. 그녀는 못마땅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화를 내며 마침내 내 등짝을 찰싹 때렸다.

 “다음부턴 잘하라고. 알았지!”

 “근데, 엄마……

 “나중에 얘기하자.”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 생각했는지, 그녀는 이렇게 격려의 말을 잊지 않고는 여느 때처럼 내 말도 듣지 않고 바쁘게 서둘러 나갔다. 나는 가끔 그녀가 나에 대해 도가 지나칠 정도로 집착한다는 생각에 솔직히 부담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서운한 점도 있는데, 그건…… 그녀는 날 꾸짖기에 바빴지, 내 대답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무리 내가 열을 내며 말해봤자 소용없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 자신도 어머니에 대해 관심을 넘어 걱정되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어머니 목의 피부병인데, 이게 더 돋쳤나 보다. 목에 스카프 두르는 것 대신에, 귀찮았는지 아예 답답해 보이는 흰색 터틀넥의 옷으로 바꿔 입은 거였다.

 ‘그런 거 살 돈이 있으면, 병원에나 가시지.’

 나는 이렇게 마음속으로나마 그녀를 애들처럼 타이르고 있었다. 정중히 말해봤자 되돌아오는 말들은…… 시간이 없다는 둥, 너나 잘하라는 둥의 뻔한 대답들만이 쉴 새 없이 나열되니까.

 문밖에서 고집쟁이 어머니의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더니, 점차 속도감 있는 엔진 소리로 바뀌어 들려왔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점점 사라져 갔다.

 

 

 본능적으로 수인이의 생각으로 다시 내 머리가 가득 차 올라왔다. 급작스러운 무의식의 탈바꿈이라서 내 자신도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그녀의 집을 찾는 것, 그밖에 다른 어떤 것들에는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이겠지만 말이다.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졌다. 누구인들 내 모습에 서운해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따금 수인이 뿐 아니라, 나의 소중한 친구들을 생각할 때마다 이들을 하나둘씩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살 충동까지 일었다. 급기야 고층 빌딩에 올라가 강한 맞바람을 등지고 잠시 하늘을 날다가 땅바닥으로 처참하게 떨어지고도 싶었다.

 당연히 학교 보충수업의 내용도 들려오지 않았다. 사회 선생님은 수업 중에 멍하니 넋 놓고 있는 내가 못내 안타까워 보였는지, 수업 내내 날 일으켜 세워놓은 공부하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 사회수업이 끝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심각하게 넋이 나가 있었다. 내 짝꿍 세진이와 뒤에 있는 근우 녀석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내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며, 정신 차리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오늘 하루가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골머리 아픈 수업은 끝났다. 평소처럼 다들 떠들어대며 교문을 나서거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둘 중의 어느 것도 아니었다. 나 같은 모범생이 엇나가는 건 한순간인 듯싶었다. 내 머릿속에는 에메랄드 숲에 있는 수인이의 집찾기로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내 뺨이 불그레하게 달아올랐고, 뇌가 터질 지경이었다. 에메랄드 숲은 오늘따라 내가 가는 걸 꺼려했는지, 숲의 전후방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신비스럽고 그윽하기조차 했지만,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수인이의 집은 에메랄드 숲의 가장자리쯤에서 한가운데를 향해 전력 질주하면, 15초 내에 있다고 했었지…….’

 나는 여러 번 기억을 더듬었다. 그녀가 아무리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적셔 흘러내릴 정도로 달린 시간이라고 해도, 나는 아마 10초 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일 듯싶었다. 나는 그녀의 굼벵이처럼 느린 스타일을 오랜 동안 가까이서 지켜봐 왔던 터라 어렵지 않게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모든 고민들을 뒤로 밀어 던져 버리고, 에메랄드 숲을 크게 동심원을 그리며 원 중심으로 수렴하듯 100여 미터 높이 정도 되는 큰 나무들을 찾았다. 예상했던 대로다. 그런 나무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10미터도 아니고 자그마치 100미터 높이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한두 바퀴 돌며 100미터 높이의 나무는 포기하고 큼직해 보이는 것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골라냈다. 어림잡아 세어보면, 30에서 40그루 정도는 되어 보였다. 가장 커 보이는 나무의 높이는 기껏해야 30여 미터 정도. 하지만 이 나무 주위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벽돌이나 나무로 지은 집은 어디에도 없었고, 심지어 마당을 상징하는 울타리조차 찾기 힘들었다.

 모든 게 허망했다. 다리도 아파오고 후들거렸다. 결국 그녀가 나를 속였다는 생각이 또다시 들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배신감마저 치밀어 올라왔다. 그런데 어느 나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무 위에서 갑자기 흐느껴 우는 소리가 멀찌감치 들려왔다. 수인이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그녀가 아니 해도, 한 여인의 울음처럼 들려왔다. 심지어 그녀가 눈물을 훔치며, 날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환청이었을까? 아마 그런 거겠지. 바람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가 너무나 또렷이 들려왔다. 그 소리의 진원지, 나무를 찾아 올라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를 너무 보고 싶어 한 나머지, 내가 정말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구슬피 흐느껴 우는 소리가 멈추려는 기색도 없이 환청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무서움마저 엄습해왔다. 이러다가 내 스스로 정신 줄이라도 놓게 된다면, 어머니의 슬퍼하는 모습을 내 자신이 어찌 감당할지. 나는 억지로라도 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나의 모든 계획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집에 오자마자, 실성한 듯 침대 위에 고꾸라진 채 누워버렸다. 나무 위에서 들려왔던 한 여인의 흐느껴 우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오는 듯했다. 나의 온몸이 오싹해졌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려왔던 요란한 말발굽 소리도 흙먼지를 뿌옇게 흩어내듯 갑자기 울려대더니, 내 귀청을 찢고 있었다. 나는 귀를 부둥켜 쥐고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고통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가끔 온몸을 뒤척이며 울다가 밖이 더더욱 어둑해지면서, 넋 나가듯 곤히 잠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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