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9
나도 모르게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빛이 눈 속으로 들어왔다. 과학혁명이 자연법칙을 뒤엎어버리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듯싶을 정도로, 또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내 온몸은 몹시 쑤시고 아팠다. 열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것 같았다.
인기척은 없었지만, 어느덧 내 이마 위에 찬 기운이 흘러내렸다. 나는 눈을 크게 치켜 올렸다. 어머니가 내 곁에서 불안한 듯 몹시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엄마?”
“응…… 괜찮아?”
그녀는 새벽부터 나의 신음소리에 잠이 깨어 내 이마 위에 찬 물수건을 올려놓고 간호하고 있었다는 거다. 이른 아침부터 터틀넥의 옷을 입고 있는 어머니의 표정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나처럼 아파 보이기조차 했다. 내가 잠자면서 소리치며 울기도 했다는데.
“열이 많이 내려서 다행이야. 병원 가는 것보다는 하루 정도 학교를 쉬고 몸 편히 집에 있으면, 나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겠니?”
“응, 그렇게 할게. 엄마.”
엄마도 하루쯤 학교 가지 말고, 피부과 병원에 가시지, 라는 말이 내 입안에서만 맴돌다가 결국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재차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가서 내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그녀는 또다시 나에게 다가와서 내 온몸을 이불로 포근하게 잘 덮어주고는, 여느 때처럼 서둘러 나갔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몸이 몹시 아파 학교에 못 갈 것 같다고 담임에게 전해준 모양이다.
‘모처럼 나에게 자유가 찾아온 건가.’
나는 요 근래 공부와 씨름하기보다는, 수인이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운 좋게도 나의 여러 번민으로 아픈 덕택에 모처럼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내 이마에 올려놓은 수건을 내려놓고, 일어나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 바깥 공기를 한숨에 들이마시고 싶어졌다. 그런데 일어나려고 하다가 머릿속이 까맣게 되더니 나도 모르게 방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마도 갑자기 일어나려 하니, 피가 뇌까지 전달이 잘 안 됐나 싶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방바닥에 잔뜩 웅크린 채 눕게 됐고, 방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게 됐다. 방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문득 내 머리를 스쳐 가는 것들이 있었다.
‘그래! 아버지 서재에 가보자. 거기에는 아마 내가 궁금해 하는 것들을 단숨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몰라…….’
우리 집은 겉으로 보면 단층집처럼 보인다. 하지만 뾰족지붕이라서 이 층과 같은 다락방이 있다. 어머니가 예전에 아버지를 위해 다락방을 서재로 꾸며놓았다고 말한 게 기억났다.
아버지 서재는 바로 내가 바라보고 있는 천장 위에 있던 거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후에도 서재의 청소를 일주일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해왔다. 그리고 서재로 올라가는 계단도 어머니가 손수 아주 멋진 베이지색 나무로 디자인해 놓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아버지 서재에 가서 놀게 되면, 엉망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그곳에 절대 얼씬도 못하게 약간 색이 바랜 은빛 열쇠로 굳게 잠가 버렸다. 나는 그녀가 그 정도로 서재에 대해 예민했고, 혼신의 정성을 쏟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 서재를 굳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예 그런 마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녀도 안심이 됐는지, 내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곳에 아버지 서재의 열쇠를 놓아두기도 했다. 요즘은 거실 꽃병 속에 넣어 두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이젠 어린아이가 아니라서 서재에 들어가도 큰 말썽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리라.
그런데 아버지 서재는 다락방을 개조한 거라서 창문조차 없었다. 나는 신이 났다. 어떤 누구도 엿볼 수 없는 ‘완벽한 아지트’였던 것이다!
밤새 헛소리까지 하며 앓았던 내 모습은 도저히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거실에는 예상했던 대로 꽃병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 안엔 약간은 색깔이 바래 보였지만, 은빛이 자욱한 열쇠가 뎅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왼손으로 그 열쇠를 ‘꽉’ 움켜잡았다. 나는 왼손에 물건을 잡고 있으면, 행운이 왔던 기억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하는 일마다 삐걱거리는 액운을 멀리 벗어 던지고 싶었다. 이번만큼은 행운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락방으로 향하는 층계를 단숨에 올라갔다. 나는 호기심의 발동으로 허공에 붕 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전혀 예정에 없었던 일들이라서 떨 듯이 연주하는 기타의 트레몰로 연주기법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거려 왔다.
머뭇거림 없이 은빛 열쇠로 아빠 서재 문을 열려 했다. 열쇠 구멍이 왠지 비좁게 느껴졌다. 빡빡하게 열쇠가 돌아갔다. 다락방에 홀로 산다는 수인이. 그녀의 몸을 탐하려 해도 늘 강하게 저항하는 그녀의 손길과도 같았다. 그런다 해도 어떤 악의 근원도 이를 방해하거나, 반항할 수 없었다. ‘탁’ 하는 작은 경쾌한 소리와 함께 비로소 굳게 닫힌 문이 열리고 말았다.
그 순간…… 서재 안에서 다채로운 빛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햇빛에 있는 여러 다양한 색들이 모두 다 연출한 것만 같았다. 너무 눈부신데다가 거센 바람이 나를 휘감아 층계 밑으로 나뒹굴게 했다.
아찔했다. 하지만 서재엔 창문조차 없었기 때문에, 문을 닫아놓으면 공기가 순간 압축되어 진공상태와 흡사하게 변모되는 하나의 ‘과학적인 사실’로 여기려고 애써 노력했다. 마치 뜨거운 물이나 공기를 플라스틱 병에 넣어 뚜껑을 밀착시켜 닫아버리면, 여는 순간 병 안에서 뚜껑을 밀치는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것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문학 Novel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Social Fantasy31]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0) | 2020.12.04 |
---|---|
[Social Fantasy30]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0) | 2020.12.04 |
[Social Fantasy28]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0) | 2020.12.03 |
[Social Fantasy27]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0) | 2020.12.02 |
[Social Fantasy26] 카나리아의 흔적 (0) | 2020.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