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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25] 카나리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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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5

 

 나는 보충수업을 마치자마자, 모키 집으로 서둘러 갔다. 어젯밤 갑작스럽게 보자는 나의 말을 흔쾌히 받아들인 모키는, 문 앞까지 미리 마중 나와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는 어깨를 쫙 모습이 꽤나 당당해 보였다.

 “어이, 친구 잘 지내셨는가? 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학교 다니기도 힘들 텐데, 일로 이 누추한 집을 방문하셨나?”

 마치 그가 어른이 된 것처럼 제법 성숙한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그만 좀 해라. 컴퓨터 공부가 애 늙은이로 만들었냐?”

 나는 그의 말을 장난스럽게 받아넘겼다. 그도 웃으며 내 이마와 어깨를 쳐주더니, 나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하는 듯했다. 그가 거실 모퉁이에 있는 방문을 열자마자, 나는 기겁하여 한 발 뒤로 물러섰다.

 “, 하느님!”

 그 친구의 방은 정말 미국 CIA 요원들이 기거하는 비밀의 방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컴퓨터가 자그마치 열 대가 넘었다. 손바닥만 한 노트북부터 해서 초창기 컴퓨터 에니악처럼 거대한 캐비닛 크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방에는 어디에도 대학 입시 참고서 같은 것은 없었다. 그 대신 정보원이나 학자처럼 정보 해킹에 대한 책들이 수백, 수천 권이 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책도 먼지 하나 없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남 눈치 안 보고 자신의 길을 갈 줄 아는…… 대단한 친구였다!’

 나는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나의 고민을 즉시 해결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키야, 인터넷에서 접근이 금지된 조변림 사건을 알아봐 줄 수 있겠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사건은 열리지 않아.”

 나는 겉치레 인사하는 것도 잊은 채, 거두절미하고 부탁을 늘어놓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뭘 그리 급하누…… 좋아, 나에게는 흥미 있는 일거리군. …… 무슨 사건이라고 했지?”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나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 할 수 있겠어?”

 “걱정 말고, 집에 가서 자장면 한 그릇 사줄 준비해 놓고 있기나 하셔. ‘고구마 피자한 판은 너에겐 무리이겠지? 아니면, 하루 온종일 열기가 지속되는 따끈따끈한 주머니 난로 하나 사달라고 할까?”

 그는 또 한 번 자신감을 드러내며, 흔쾌히 내 부탁을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친구 말에 안심은 됐지만……. 그 후 2~3일이 지났나 싶을 무렵 밤 10시쯤이었다. 어머니는 학교 일로 무지 피곤했는지 일찌감치 잠에 아떨어져 그녀의 코 고는 소리가 안방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집 전화벨 소리가 다급하게 울려댔다. 나는 내 친구 모키의 전화라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 직감은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나의 기대와 다르게 모키의 다급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화선을 통해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처참한 조변림 사건! …… 날개 달린 신데렐라…… 으아아악!”

 그의 괴성이 들려왔다. 모키의 목소리임에 틀림없었다. 그의 비명이 전화선을 관통해 내 귀가 찢어질 정도로 울려댔다. 최근 며칠 전부터 통신사 직원들이 작업복 차림으로 와서 힘들여 교체한 새로운 통신 광케이블도 남아나지 않을 듯싶었다. 그 짧은 순간에 한스 선생님과 교장의 말들이 뒤섞여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변림 사건을 알게 되면, 죽는다……. 날개 달린 신데렐라…… 신데렐라와 워싱턴 정가 얘기가 아이들 입시에……

 나는 전화기를 내던져 버리고 당장 그 친구 집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머뭇거렸다. 그 친구의 안전을 위해서 나보다 기동성이 뛰어난 경찰에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뚜우뚜우

 통화 중이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친구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중이었다. ‘뚜뚜소리가 나의 신경을 날카롭게 건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힘껏 전화기를 내동댕이쳐버렸다.

 전화기가 침대 모서리에 맞고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다. 전화기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예전처럼 내 방 창문에서 사람만한 검은 그림자가 생겼다. 그러더니 그 그림자가 훨훨 하늘로 솟구쳐 날아올랐다. 밤하늘의 별빛에 비친 그 모습은…… 희미해서 자세히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비행물체 같았다.

 지금은 그게 박쥐인지, 새인지는 관심조차 생기지 않았다. 무조건 집 밖으로 달려 나가야만 했다. 손에 잡히는 어떤 옷이든 몸에 대충 치고 나온 것 같았다. 택시를 잡아탔다.

 “푸른마을 2302번지로 빨리 가주세요. 사람이 다쳤어요. 부탁해요! 기사 아저씨.”

 나는 다급하게 숨을 헐떡이며, 소리치듯이 말했다.

 “, 알았네.”

 기사 아저씨는 다급한 내 목소리를 듣고는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아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가로등과 자동차의 전조등만 의지해서 시내를 한 시간에 100킬로미터 속도로 달린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기사 아저씨는 새파랗게 질린 내 얼굴을 보고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제 모퉁이만 돌면 푸른마을이 나타난다.

 그때, 정말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어디에도 경찰 순찰차가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디에선가 불쑥 경찰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갑자기 어수룩해 보이는 경찰이 멈추라고 길 저편에서 손짓하고 있었다. 기사 아저씨도 놀랐는지, 브레이크를 급히 밟고는 멈춰 섰다.

 차바퀴 타이어가 아스팔트 표면에 거세게 마찰을 일으키면서 일어난 굉음에 내 고막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그 바람에 내 앞이마가 앞좌석에 부딪힐 정도로 차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자동차 앞 유리에 나지막하게 붙여진 내비게이션만은 관성의 법칙을 못 이기고 사정없이 차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주차 브레이크를 당기더니, 운전대를 분에 못 이겨 한 손으로 거세게 내리쳤다.

 경찰은 가볍게 거수경례를 붙이고는 관등성명도 대지 않은 채, 과속했다며 거의 30여 분 동안 주의 아닌 설교를 하얀 서리 같은 입김을 뿜어내며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이번만은 봐주겠다며, 골목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게 아닌가. 얼마 지나 골목에서 하고 바람 소리와 함께, 하늘로 오르는 새 한 마리가 보였다. 날개가 일그러진 달빛에 반짝이며, 에메랄드 보석 빛을 쏟아냈다. 한마디로 환상적이었다. 멀리 보여서 새의 크기는 쉽게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엄청 커 보였다.

 기사 아저씨는 못내 분했나 보다.

 “제기랄, 재수 없으려니까. 학생! 택시비는 받지 않을 테니, 여기서 내렸으면 좋겠네.”

 그는 기분이 몹시 상했는지 분을 삼키며 말했다.

 “죄송해요, 아저씨.”

 나는 거듭거듭 굽실거리며,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나의 전 재산 1만 원을 뒷좌석에 놓고 내렸다. 나의 자격지심이라고나 할까.

 그 친구 집까지는 1킬로미터 정도 남짓했다. 앞만 보고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나는 한참을 뛰고 나서 멈춰서 헉헉거리며 숨을 고르고 앞을 내다봤다. 누가 신고했는지 어둠 속에서 경찰차 경광등이 번쩍번쩍 빛을 뿜어대며 모키 집 앞에 두세 대가 서 있었고,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행인 서너 명 정도가 그곳을 둘러싸고 있었다. 모키의 어머니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모키도 나처럼 아버지를 일찍 여윈 탓에 가족이라곤 어머니와 단둘밖에 없던 거였다. 이젠 어머니 홀로 이 힘든 세상을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경찰이 보다 못해 모키의 어머니의 양손을 가볍게 붙들고 위로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경찰은 날 보자마자 소리쳤다.

 “넌 누구냐?”

 “아니, …….”

 경찰들은 날 경계했고, 나는 처음 겪는 일이라서 무척 당황했다. 모키의 어머니는 양손을 부르르 떨며 잠시 눈물을 훔치더니, 내 아이의 친구라고 간단히 소개해 준 덕분에, 경찰의 경계가 누그러지게 됐다.

 나는 친구 어머니가 정신이 혼미해 보였기 때문에, 모키에 대하여 경찰에게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거죠?”

경찰은 침울해했다.

 “창밖에서 누가 돌을 던졌나 봐. 큰 돌이 창문을 깨고, 네 친구 머리를 깨뜨렸어. 잡히기만 해봐라!”

 “죽었나요?”

 “……

 경찰 말대로라면…… 결국 모키는 죽은 것이다.

 “혹시 머리를 새에게 쪼인 것은 아닌가요?”

 나는 가장 궁금했던 말을 쉽게 내뱉었다. 이 말에 경찰들이 깜짝 놀라 했다. 그들은 한마디로 급소를 가격당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경찰들은 애써 내 말을 무시하는 듯했다.

 “새들이 무슨 힘이 있겠냐?”

 옆 허리에 찬 권총을 한 손으로 툭툭 치던 한 경찰이 귀찮듯이 말하며 끼어들었다.

 “그게 아니라요, 뭐든 의심해봐야 하잖아요.”

 “그건…… 나중에 조사해 보겠네.”

 그들은 이 같은 성의 없는 말로 내 질문의 답변을 대신하고는 유유히 서둘러 가버렸다.

 모키의 어머니는 나와 경찰의 오가는 대화를 들었나 보다. 그녀는 억지로라도 슬픔을 잠시 털어버리려는 듯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며,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컥컥…… 가온아, 내 아이가 죽을 당시 나는 옆방에서 자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그 아이 방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서 깼지 뭐야. 급히 서둘러 가보니, 큰 돌 하나가 방 한가운데 뎅그러니 놓여 있었고, 사방엔 아들의 피가 낭자했다고. 그 녀석이 가장 아끼던 컴퓨터는 박살 나 있었어. 이상한 건, 새 깃털 수십여 개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깃털은 작년에 날씨가 추워져서 사준 오리털 재킷에서 떨어졌다고 단순하게 생각을…….”

 나는 문득 박살 난 컴퓨터와 그 오리털이 이 사건을 푸는데, 결정적인 단서라고 생각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어머님, 그러면 그 컴퓨터와 오리털은 어디에 있죠?”

 나는 모키의 어머니를 심문하듯 다그쳤지만, 다행히 그녀는 내 말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경찰들이 가져간 것 같아.”

 일이 꼬여갔다.

 “그러면, 오리털 재킷은 어디에 있어요?”

 나는 재차 다그쳤다.

 “오리털 재킷……? 그것도 경찰들이 가져갔지. 그들이 더 조사해봐야 한다면서……

 모키 어머니도 의아해하면서 말했다.

 “근데 못 보던 유리구두 한 짝이 피 흘리며 쓰러진 모키의 머리맡에 놓여 있었더구나.”

 “…… 유리구두요? 그러면 그건 어디에 있는데요?”

 “가온아, 미안하다. 그것도 경찰이……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유리구두라면……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교장이 말한 신데렐라와 모키가 죽어가면서 소리친 날개 달린 신데렐라…… 이 말들이 서로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는지를 밝혀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내가 어린 학생이다 보니, 경찰에게 가서 따져 봐도 그들은 날 무시할 게 거의 확실치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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