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7
머뭇거리다가 벌써 텔레비전 디지털시계가 9시 31분을 표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새떼 죽음을 보도한 기자처럼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만일을 위해서라도 조그마한 칼을 챙겼다. 호신용으로 쓸 생각이었다. 한 손에는 손전등을 쥐었다. 만에 하나 비밀의 문 중간에 손전등의 불이 꺼지기라도 하면, 암흑의 천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가는 도중에 손가락만 한 크기의 건전지 두 개도 구입했다.
아직까지 비밀의 문 주변의 공사가 한창인지라 신발에 혹시나 못이 박힐까 정신을 더욱더 가다듬었다. 다행히 가로등의 환한 불빛들과 반딧불 여럿이 나를 보호해주는 듯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하수구 입구에 천천히 들어섰다. 이곳은 한 줄기 불빛도 아쉬울 정도로 정말 어둡고 캄캄했다. 시궁창 냄새까지 내 머리를 흔들어댔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었다. 그러나 운명과 호기심이 잔뜩 뒤섞인 주사위는 던져지고 말았다. 비밀의 문 천장 위쪽에서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입시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는 듯했다. 졸업반 선배들…… 그들이 분명했다. 공부를 마치고 하교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서둘러야 했다. 벌써 10시가 넘어가고 있는 거였다.
“아아악……”
서둘러야 한다는 조바심에 순간 발을 헛디딘 것 같았다.
“으아악!!!”
나는 소스라치며 연이어 괴성을 질러 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발을 다쳐서 소리를 낸 게 아니었다. 손전등을 발아래로 조금씩 내려 비춰보니…… 새들을 밟은 것이었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새들을 말이다. 어림잡아 30여 마리나 되어 보였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렸다. 학교 컴퓨터실 앞에서도 새를 밟아 놀랐었는데, 이번에는 한 마리도 아닌 수십여 마리나 되다니.
아마 학생들이 운동장에 앉아 있던 새를 잡아, 이 하수구 속으로 내팽개쳐버린 건 아닐까. 또다시 얄미운 서영이와 알미안이 떠올랐다. 여하튼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을 참이었다. 이러다가 내 방 창가에서 봤던 사람만한 새라도 나타나 나를 상대로 복수라도 한다면……. 난 영락없는 개죽음을 당하는 꼴이 된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학교 구내식당 오물 처리장일 것이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더 이상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죽어가는 새들을 밖으로 들고 가서 꽃밭에 묻어줄 여력도 없었다.
나는 체념하듯이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시궁창 물에 흘려보내려고 뒤돌아섰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내 뒤에선가 수건 같은 것으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내 입을 확 틀어막고 얼굴까지 뒤집어씌우더니, 내 손에 있는 손전등과 새를 확 낚아채 어디론가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내 목을 조른 채, 날 질질 끌고 가는 강한 팔의 힘을 느꼈다. 급작스러운 일이라서 기절까지 할 지경이었다. 분명 그 사람만한 박쥐같은 새일 거라는 생각이 내 뇌 속 깊이 밀려들어 왔다.
‘난 이제 끝난 걸까? 아버지처럼 어머니를 두고 죽는구나. 말도 안 돼!’
나는 공포감에 온몸이 전율해 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 순간에 울음을 멈출 수 있다는 건, 분명 신만의 영역일 듯싶었다. 기형적인 살인 DNA로 유전자 변이를 피할 수 없었던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를 오물 처리장으로 질질 끌고 가는 것 같았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날개로 나의 손을 자르고 머리를 베어 죽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새 소리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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