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4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멀리서 보였다. 그녀는 하늘거리는 니트 티가 잘 어울렸고, 키가 아담하며 자태도 고았다. 게다가 학자풍도 그녀의 몸에 담뿍 배어 있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자태는 둘러싸여 있는 책들과도 제법 어울려 보였다. 가까이서 보더라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눈코입이 오목조목한 게 수줍은 공주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가끔 낯간지럽게 ‘공주 선생님’이라는 애칭을 써가며 책을 빌려 가곤 했다.
그런데 이 급한 순간에 그녀는 퇴근하려고 가방을 바삐 챙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 앞으로 뛰어갔다. 일부러 나는 더 조바심 내며, 남자답지 못하게 애교 섞인 말로 간곡히 부탁했다.
“공주 선생님, 너무 급해서 그러는데요, 지금 신문을 열람하면 안 될까요? 죄송해요.”
“지금은 안 돼! 내일 오렴. 도서관 문을 잠가야 한다고.” 그녀는 잔뜩 짜증을 드러내며 공주답지 못한 얼굴로 나에게 모질게 대했다. 조금 전에 도서관 출입문 앞에서 다리를 꼬고 기다리고 있는 청년 모습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친구인가 보다. 왠지 선생님이 못생겨 보이기 시작했고, 그 남자친구의 척추가 다리 꼬듯 비틀리길 순간 바랐다. 질투심이 아닌 것은 분명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의 절박함과 호기심을 더 이상 억누를 수가 없어서 또 한 번 울다시피 부탁했다.
“선생님, 잠시만요. 딱 30분만요.”
그녀는 나의 간곡한 부탁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도서관 출입문에 서 있는 청년에게 가더니만 뭔가의 얘기를 주고받는 듯했다. 멀리서 보인 청년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굳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곧 그녀는 머뭇거리는 나에게 다가왔다.
“음…30분 만이다. 알았지?”
“네!”
나도 모르게 마치 승리감에 도취된 듯 두 손을 불끈 쥐고 말았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염치없게 반시간 정도의 여유를 그녀에게 부탁한 거였다. 그녀의 남자친구처럼 보인 그 청년은 어깨를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두 손으로 라이터 불을 가리며, 입에 문 담배에 불을 갖다 대는 모습이 우연 결에 도서관 창밖으로 보였다. 그는 아마 퇴근 시간이 늦어질 거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도서관 현관 밖으로 나갔나 보다. 나의 이기적인 성취가 타인에겐 쓸쓸한 탄식과 고통을 안길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가 나를 순간 괴롭혔지만…… 그 여러 상념들이 나의 여러 고민과 호기심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지금은 나에게 집중해야만 했다.
‘몇 년 전일까? …… 아마도 한스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둔 시점일 듯싶었다. 2년 정도 쉬셨던 거 같은데…….’
난 정신없이 2년 전의 가볍지만은 않은 여러 뭉치의 신문들을 큰 책상 위에 확 뿌렸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넘겨댔다. 사서 선생님은 헝클어져 있는 신문들을 보며, 억지웃음을 띤 채 뒤로 쓰러져 넘어가는 시늉까지 보였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너무 진지했다. 그녀도 나의 진지한 모습에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단단히 팔짱을 끼고는, 물끄러미 신문을 넘기는 내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1, 2, 3, 4, 5월 신문…….
노력하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했던가. 금방 찾았다.
5월 20일 자 신문 1면 헤드라인 기사 조변림. 그런데 이게 무슨 귀신 곡할 노릇인가!
헤드라인 기사 제목은 있지만, 밑에 상세한 내용의 기사는 예리한 칼로 오려버려…… 없었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지!”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 봤던 사서 선생님은 팔짱을 풀고, 화를 버럭 내며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다른 신문을 보관해 놓은 게 또 있었는지, 열쇠를 갖고 큰 서장을 열었다. 그때였다. 그곳에서 갑자기 새 한 마리가 후다닥 날개를 저으며 나와, 천장에 부딪힐 정도로 고공비행을 하다가 창살을 부리로 잡아 몸통을 이리저리 비틀어 가까스로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새가 여기에 갇혀 있었다니!”
나와 그녀는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 순간 아침에 텔레비전에서 봤던 미국 아칸소주의 5천 마리 찌르레기와 붉은 날개의 검은 새의 처참한 죽음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지금 이 새와는 아마 관련이 없어 보였지만……. 나와 그녀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여러 말들을 한꺼번에 늘어놓았다.
“새들이 어제오늘 너무 많이 날아 들어왔죠. 우연한 일일 거예요.”
“그러게. 신기한 일이네.”
그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진정해 가며 거기에 있는 신문 5월 20일 자 신문을 꺼냈다. 이건 또 무슨 괴이한 일인가. 그 신문은 마치 새 부리로 마구 쪼인 것처럼 사정없이 찢겨져 엉망이 돼 있었다.
“설마 그 새가……?”
이번엔 사서 선생님은 애써 놀란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태연한 척했다. 아마 그녀는 새가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일 교무회의에서 이 일을 말해야겠어.”
그녀는 행정 처리로 이 일을 일단락 시키려 했다.
새, 한스 선생님, 그리고 미궁에 빠진 조변림 사건 등등 때문에 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사서 선생님에게 인사하는 둥 마는 둥하며, 얼른 도서관 쪽문으로 빠져나와 본관 건물 컴퓨터실로 향했다. 2년 전 신문이니까 컴퓨터로 검색하면 나올 듯싶었다.
애처롭게 보였던 그 청년은 도서관 현관 앞에서 그녀의 연락을 받았는지, 피우던 담배를 급히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발로 밟아, 마지막 남은 담배 불씨를 꺼버렸다. 그는 아까보다 한결 가벼워 보이는 모습으로 곧바로 도서관 층계 위를 달려 올라갔다. 그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나는 의문투성이인 조변림 사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본관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실성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컴퓨터실을 찾았다. 내 바로 옆에 컴퓨터실이 있는 걸 알 게 된 건, 체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대부분의 일이 다 그렇겠지만, 몹시 갈망하는 일들은 그 즉시 이뤄지지 않는다. 나는 마침내 컴퓨터실의 문고리를 돌리며, 앞뒤로 흔들어댔다. 하지만 문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이미 굳게 닫혀 있다 보니, 열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내 발밑에 ‘물컥’ 하고 밟히는 뭔가를 느낄 수가 있었다.
“아악!”
나는 깜짝 놀랐다. 컴퓨터실 문 바로 아래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새를 밟은 것이다. 에머튼 선생님의 막대기에 머리를 맞고 피 흘린 그 새 같았다.
가까이 보니, 새가 싸늘하게 죽어있는 게 아닌가! 나는 소름이 확 돋았다. 땀까지 등에 맺혀 흐르는 것이 어렵지 않게 감지됐다. 두 손으로 새를 조심스럽게 주워 올렸다. 나는 그것을 더 자세히 살펴봤다. 예상대로 그의 막대기 자국이 새 머리 왼쪽 모서리 쪽에 선명하게 나 있었다!
“으악.”
나는 또 한 번 뒤로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다. 이 새가 어떻게 여기까지 날아온 걸까.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까지 200여 미터나 되는 거리를……. 어제오늘 갑자기 괴이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지만, 우연치고는 꺼림칙했다. 모든 게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극도로 예민해지면서,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나는 뒤돌아볼 여유 없이 곧바로 집을 향해 무조건 뛰었다. 집에 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되는 휴대전화기가 오늘만큼 아쉬운 적이 없었다. 이리저리 뛰고 있는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인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의 이기적인 탐구심을 채우고 싶은 열정도 한몫하고 있었다.
나는 한참 집을 향해 뛰고 있는데, 어제처럼 머리 위쪽으로 누군가 나를 계속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웠지만, 내가 예민해져서 그럴 거라는 생각으로 애써 돌렸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허둥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컴퓨터를 켰다. 느리게 작동하는 컴퓨터를 보고 있노라니, 아예 모니터를 박살내고 싶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가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그래도 진정하려 애썼다. 마침내 인터넷으로 들어가 검색어 ‘조변림’을 입력하게 됐다. 마치 굳게 닫힌 큰 성문을 여는 듯 힘겨웠다. 두서너 개의 조변림 관련 기사들이 검색됐다. 망설임 없이 그 기사들을 클릭했다.
느리게 열리는 검색된 사이트……. 하지만 허무했다.
‘아, 조변림 사건 기사들은 모두 ‘접근불가’였다!’
정말 어이없었다.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인 나도 감정 조절을 실패한 나머지 컴퓨터 모니터를 결국 주먹으로 ‘팍’치고 말았다.
그 순간 갑자기 창문 밖에서 파드닥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내 방의 창문에 검은 그림자가 크게 드리워졌다. 나는 급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가 위를 올려다봤다. 에메랄드 빛깔의 비행기인가 새인가 높게 치솟아 멀리멀리 날아가 버리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나는 창문 밖으로 몸을 반쯤 빼고 눈여겨봤다. 제주비행 길에서 환영으로 다가왔던 ‘사람만큼 엄청 큰’ 새였다. 멀리서 봐서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조류도감이나 동물원에는 그 정도로 커 보이는 새를 기억해낼 수 없었다.
‘사람만큼 커 보인 정체 모를 새! 어젯밤 꿈에서 봤던 악몽의 주인공이 아닐까.’
교장의 말들도 떠올랐다. 한스 선생님에게 새에 대한 문서를 태워버리라고 당부한 그 애절한 목소리! 재미는 없을 것 같은, 신데렐라와 워싱턴 정가의 비밀스런 이야기!
이제야 심각한 일들이 일어날 조짐을 조금이나마 직감할 수 있었다. 무감증 환자라도 궁금해 하지 않을까. 탁월한 지식과 지혜를 겸비한 한스 선생님만이 내가 겪고 있는 이 신비스러운 퍼즐을 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교는 그에게 개인 연구실과 자택까지 마련해 줬다. 엄청난 특별대우인 셈이다. 만일 그가 교장의 말을 무시한다면, 학교 측의 이 같은 특혜조차 버리겠다는 의미일 텐데…… 그건 그에게는 용기라기보다는 무모함일 듯싶었다.
분명 그는 교장의 말을 귀담아들을 것이다. 오늘 밤 그는 책 문서들을 태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학교 운동장이나, 그 근처에 나올 수밖에 없다. 며칠 뒤에, 아니 내일이라도 이런 일들을 물어보면, 그는 모르는 척하며 날 정신병자 취급할 것이다. 비밀스런 대부분의 문서들이 신데렐라의 어원처럼 잿더미로 사라질 게 뻔했다.
바로 오늘 밤 그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운명인 거였다. 밤의 여신이 나를 향해 이리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거였다. 요 며칠 전 에머튼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들렸던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또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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