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8
“너 여기 왜 왔어?”
나는 뜻밖의 사람 목소리가 들려 당황해 하며, 대답을 머뭇거렸다. 큰 짐승 같은 괴물이 사람 목소리를 가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내 머릿속이 하얗게 돼 버렸다. 그는 나의 대답이 떨어지기 직전에 갑자기 ‘쉿!’ 소리와 함께 자신의 입술에 수직으로 손가락을 갖다 대는 듯했다. 그러면서 강제로 내 얼굴과 머리에 뒤집어씌운 수건을 천천히 벗겨줬다.
예상대로 구내식당 오물 처리장이었다. 당근, 배추, 고등어가 한데 섞인 냄새가 내 코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코를 살짝 움켜쥐고, 서서히 눈을 떴다. 나는 떨어뜨렸던 고개를 들어 사람만한 박쥐일 것 같은 얼굴을 눈여겨 쳐다봤다.
‘이게 웬일인가…… 한… 스 선생님이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그를 본 적은 없었다. 어두운 그림자들에 가려 더 자세히는 볼 수 없었지만, 빗질을 하지 않은 긴 곱슬머리에 꼬마아이들처럼 주근깨 서너 개 정도가 눈에 잡혔다. 언뜻 혼혈인처럼 보였다. 부모 중 한 분이 미국인이나 영국인일 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벗긴 수건을 바지 앞 호주머니에 넣더니, 긴장된 얼굴로 미간을 잔뜩 찌푸려가며, 나에게 또 물었다.
“우리 학교 학생 같은데……?”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네.”
어감이 딱딱한 그의 말에 나는 응수라도 하듯 묻는 말에만 간단히 대답했다.
그는 흐릿한 달빛으로 비쳐진 내 얼굴을 뚫어지게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울었니? 사내놈이 이까짓 거 가지고……. 너 여기 올 때, 새 같은 거 뒤따라오지 않았어?”
“……아닙니다.”
나는 뺨에 얼룩진 눈물을 긴 소매로 닦으며,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워 느낀 대로만 어물쩍 넘어가듯 짤막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다행이네……”
뭐가 다행이라는 말인지 나는 그 순간 잘 몰랐다. 누가 그때 일들을 쉽게 가르쳐준다고 해도 이해를 못 했을 뿐만 아니라, 믿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내가 여기에 올 거라는 것을 이미 알았다는 식으로, 아니 예언자, 마법사처럼 나를 대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온화한 모습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생겨났다. 지금까지 겪어온 괴이한 일들을 일거수일투족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몇 시간 전에 사람만한 새가 내 방 창가에 앉아 있다가 흐릿한 하늘 속으로 날아가 버렸어요!”
나는 이 말을 하면서 ‘정신병원이나 가시지.’라는 우스갯소리 정도로 그가 내 말을 폄하할 것으로 예상하고 말한 거였다.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그의 대답은 나의 예측을 완전히 빗겨가고 말았다. 그는 ‘다행’이라는 진지한 말만을 연발했을 뿐이다. 그는 갑자기 오른손을 들더니, 학교 운동장 하늘 위를 가리켰다.
‘아…… 오늘 밤에는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새들이 운동장 주위를 돌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내 한쪽 손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첩보영화가 연상되듯, 나를 벽 쪽으로 몸을 확 밀어붙였다. 순간 내 등뼈가 으스러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나의 고통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그의 아늑한 교과 연구실 건물 안으로 들여보냈다. 운동장 위를 돌고 있는 새들과 사람만한 새들, 그리고 아직도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는 또 다른 방 앞에 멈춰 서더니 굳게 닫힌 문을 열쇠로 열어, 나를 그 안으로 안내했다. 그의 교과 연구실은 마치 개인 주택처럼 현관과 거실, 그리고 그 안에 두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문인 정문은 누구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수동식 자물쇠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의 방문들은 비밀스럽게 버튼식의 디지털 도어록과 함께 수동식 자물쇠도 구비되어 굳게 닫혀져 있었다. 이걸 보면, 그가 극비 문서나 연구 자료들의 누설을 몹시 꺼린 듯싶었다. 게다가 CCTV용 카메라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렇다 해도 내 예상이 한참 빗나가듯, 비밀스런 그의 연구실답지 않게 은은한 달빛만으로도 연구실 내부가 온통 책들로만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서재가 연상됐다. 달빛이 라임 색으로 코팅된 연구실 유리창 틈새로 스며들어 오면서, 실 같은 여러 갈래의 초록빛 선을 연출했다. 신비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연구실 안이 후텁지근했지만, 왠지 모르게 별장처럼 아늑하기도 했다.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느낌도 들었다. 멀찌감치 벽걸이에는 미국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에서 온 편지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깨알 같은 알파벳들과 하트 표시가 순서 없이 편지지에 적혀 있었다. 결혼은 했겠지. 설마 저 나이에……. 워싱턴이나 펜실베이니아, 시애틀, 파리, 로마에 숨겨놓은 여인이라도 있는 걸까?
그런데 그는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전등불을 켜지 않았다. 흐릿한 불빛만 있어도 책을 보는 카페처럼 아늑함을 더 했을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연구실의 불이 켜지면, 뭔가 무서운 일들이라도 일어나는 걸까? 아니면, 비밀스러운 연애편지라도 걸릴까 봐서? 중년 아저씨가 감출 게 뭐 그리도 많은지…….’
그는 불 켜는 것을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냥 의자 위로 올라가더니, 아예 연구실 천장에 붙어 있는 전구까지 빼 버리는 게 아닌가. 혹시나 내가 약간의 실수라도 해서 전등 스위치라도 건들까 봐 그런 것 같았다. 다른 건 몰라도 학교 운동장에 있는 새들이나 사람만한 새들한테는 절대로 우리 모습을 들키지 않게 하려는 그의 행동일 듯싶었다. 이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 당시 나는 그가 선생님으로서 오랜 공백기가 있는 탓에 너무 예민해진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후에 생각해보면, 살 떨리는 순간이었던 건 분명했다.
그와 나는 어두컴컴한 연구실의 라임 색 유리창과 버드나무 잎사귀 사이로 스며들어온 초록빛의 달빛만으로 서로의 얼굴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연구실 구석에 손님용으로 깔끔하게 구비된 기다란 소파 위에 나란히 앉게 됐다. 포근한 걸 보니, 천연가죽 소파임에 틀림없었다.
“여기에 왜 왔지?”
그는 어둠 속에서 나에게 듣지 못했던 대답을 갈구하듯, 전직이 형사나 탐정가였던 것처럼 수수께끼 풀듯 재차 물었다.
그가 날 벽 쪽으로 밀어붙인 이후로 내 등 쪽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하지만 나는 이 아픔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은 채, 그의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없는 용기도 내어가며 말했다.
“조변림 사건이 뭔지 궁금해서요.”
그는 순간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그의 오른손이 부르르 떨리더니, 들고 있었던 연구실 문의 열쇠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려 했다. 그는 언제 당황했나 싶을 정도로 열쇠를 침착하게 주워 올려, 자신의 수건을 넣었던 같은 바지 주머니에 푹 찔러 박듯이 들어가게 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건 모른다.”
그는 ‘그걸 물어보려고 하수구를 통해 나를 찾아온 거였군.’이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면 내가 교장이 말하는 소리를 엿들었다고 추측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남달리 머리가 비상했기 때문에, 그 정도 예측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 듯싶었다. 그는 왜 내가 낮에도 아닌 밤늦게 그것도 하수구를 통해 자신을 찾아오려고 했는지를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다. 마치 그는 영특한 머리와 함께 텔레파시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염탐꾼인 ‘스누퍼’를 연상케 했다.
“집으로 돌아가렴. 너는 한참 친구들과 수다 떨 나이야. 복잡한 세상사에 연루될 필요가 없잖아.”
결국 그는 ‘나의 질문’을 외면해 버린 채, 조심히 집으로 되돌아갈 것을 타이르듯이 말하는 게 아닌가. 그는 연구실 문을 열어 주려고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려 했다.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오늘 밤이 지나가면, 왠지 예민하고 슬퍼 보이는 수인이하고도 더 이상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파도처럼 급격히 밀려왔다. 게다가 나를 감시하고 있을 것만 같은 정체 모를 ‘큰 새’마저도 내심 불길했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만이 그 해답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무모한 믿음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 이상의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가 막 일어서려는 참이었다. 하늘의 섭리처럼 내 어깨로 그를 툭 밀치고는 그의 오른팔을 꺾어 버렸다. 그는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발 빠르게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목덜미에 호신용 칼을 갖다 대고 말았다. 예전에도 발견하지 못했던 내 안의 동물적인 ‘해침’의 본능, 그걸 갖고 있는 또 다른 내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나의 칼에 베였는지 기겁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그도 나처럼 ‘사내’답지 못했던 거다.
그는 나의 당돌한 본능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어느덧 그의 목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나도 그 못지않게 당황했다. 내 등 쪽에는 콕콕 찔러대는 고통 대신에 이미 두려움을 감지하듯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목에 갖다 댄 칼을 얼른 내려놓고 용서를 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거대한 반격이 예상된 터라, 내가 거꾸로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 아닌가. 그의 목에는 어느새 더 많은 흥건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목이 깊지 않게 베인 건 확실했지만 말이다.
그는 죽음을 의식한 것 같았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누설하려는 듯했다. 마침내 그는 용기를 내었다.
“내가……확인할 게 있네.”
내가 예상한 답과는 너무나 다른 그의 말이었다.
“확인이요? 그게 뭐죠?”
서로가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뜻밖의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너의……겨드랑이를 만져보게 해 주게나.”
“겨드랑이요? 그건 안 돼요.”
그가 반격할 기회를 엿보는 듯했다.
“그러면……보기만 하겠네.”
그는 나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한발 물러선 느낌이었다.
“좋아요. 대신 이상한 행동을 하시면 그땐 이 날카로운 칼이 당신의 목을 관통할 줄 아세요!”
내가 말하고 나서도 정말 섬뜩했다. 그는 허리를 조금씩 굽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내 겨드랑이 밑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가 움직인 탓에 여전히 내가 그의 목에 갖다 댄 칼이 더욱더 그의 목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다. 마침내 피가 핏줄기로 뻗어 튈 지경까지 놓이게 됐다. 하지만 그는 긴장한 나머지 어떤 통증도 느끼지 못한 듯했다.
갑자기 그의 허리의 미세한 움직임이 멈추더니, 그의 얼굴과 눈조차 싸늘하게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젠 됐죠?”
나는 그가 나의 빈틈을 노리려는 연기라는 생각이 들어 그의 행동을 억눌렀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교장이 오늘 새의 공격으로 죽었어!”
당황스런 그의 뜻밖의 말이었다.
그의 말에 내 손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 버렸다. 나도 모르게 그의 목에 갖다 댄 호신용 칼을 연구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그도 누군가에게 혼자 간직하기에 벅찬 이런 비밀들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내가 떨어뜨린 피 묻은 칼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교감이…… 저녁 8시쯤 밀려있던 업무를 보고해야 했었어. 그래서 학교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교장 사택에 갔는데…… 교장이 피 흘리며 죽어있었다는 거야. 그가 그걸 나한테 제일 먼저 알렸고.”
교감은 그가 고생물, 특히 ‘조류’ 분야에 전문가라서 누구보다도 먼저 알렸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교장 사택의 창문은… 새들이 떼거리로 몰려든 흔적으로 산산조각 깨져 있었지. 교장의 머리는 새 부리에 쪼여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아마도 교장은 이를 저항하려고, 골프채로 새들을 내리쳤을 거야.”
그는 사람만큼 큰 새들이 연이어 날아들어 이것들의 공격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는 거다. 서재 이곳저곳에 교장이 흘린 피와 골프채로 얻어맞은 새들로 난장판 된 모습이 과거의 기억처럼 스쳐 지나갔다. 교장의 사모님은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고, 그 충격으로 헛소리를 하며 정신병원 앰뷸런스 차량에 실려 갔다는데…….
그는 아마 내일 이 사실들 모두 다 학생들에게는 비밀로 될 거고, 교감이 교장직을 대행할 거라고 상세히 전해줬다. 교장은 갑자기 몸이 편찮게 되어 시골에 요양할 거라는 알리바이가 자연스럽게 성립될 것으로 보였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단순히 새의 습격으로 여길 것이 뻔했기 때문에 더 이상 수사는 의미가 없어 보였다.
“모든 것을 비밀로 해 주렴. 알았지?”
그는 마침내 진정 어린 눈빛을 하며 이 같은 간곡한 부탁을 잊지 않았다.
“네, 그렇게…… 할게요.”
나는 이렇게 말해 놓고서도, 그의 말에 여러 의문들이 생겨 미칠 것만 같았다. 지금 이것을 물어보지 않으면, 영영 알기가 어려워질 거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 교장이 왜 새들에게 공격을 받은 거죠?”
나는 용기 있게 생각나는 대로 물었고, 그는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그건 지금 대답할 수 없고, 말한다 해도 네가 이해할 수 없어.”
나는 미로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조변림 사건만이라도 가르쳐 주세요. 네, 제발!”
나는 애원하듯이 대답을 졸라댔다.
“조변림 사건? 그건 말해줄 수 없어! 근데 넌 그걸 어떻게……. 누구에게 들었나?”
그는 무척 당황해 하며 다짜고짜 물었다.
나는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큰일이 나에게 닥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수업 중에 화장실에 가다가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과 대화하시는 걸 우연찮게 들었습니다.”
“아, 교장도 조변림 사건에 대해 알게 돼서 죽은 거야! 더 이상 알려 하지 마. 너도 위험해.”
그의 얼굴 표정을 보면, 날 위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렴. 오늘 일은 모든 게 비밀이야. 어느 누구에도 누설해서는 안 돼. 알겠지? 너의 칼 솜씨는 없던 일로 하겠네. 너의 과도한 탐구심 정도로 이해하마.”
그는 다시 한 번 오늘 일을 비밀임을 강조하면서, 옷걸이에 걸린 흰 언더셔츠로 피가 흐르는 자신의 목을 감쌌다.
‘위험하다? 죽을 수 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나를 대하는 모습이 ‘성자’ 같았다. 그러니 그의 리더십이 전국적으로 파다하게 소문이 났던 거였다. 나는 그의 말을 순순히 따랐고, 그럴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는 뜻하지 않은 교장의 죽음으로 새에 대한 문서들을 불사르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나는 그의 연구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어디에도 신문 종이조차 불사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연한 결과일까? 문서 내용이 궁금했지만, 꾹 참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집으로 무조건 내달음 쳤다. 다행하게도 멀찌감치 보이는 털보 경비 아저씨는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벌써 잠에 취해 눕다시피 앉아 있었다.
어떤 누구도 내 뒤를 밟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집에 무사히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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