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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12] 카나리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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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2

 

 

숲 속 비밀을 알게 된다면

 

 

   

1

 

 “아침이야, 또 학교 늦겠다. 어서 일어나라니까!”

 “……

 다행히 어머니였다.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늘 그랬듯이 또 틀에 박힌 일상이 시작되고 있는 거였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조금이라도 지각하는 꼴을 못 봤다. 그녀는 5분 정도 지각하는 학생이라도 교실 뒤로 내보내 수업 내내 손들고 서 있게 한다는데.

가끔은 자상하기도 하지만…… 얄미운 엄마다!’

 그래도 그녀의 카랑카랑한 으름장 놓는 목소리에 내 눈이 번쩍 띄었다. 악몽에서 벗어났다고나 할까.

 진청 재킷에 흰 스카프를 목에 두른 그녀는 내 방에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창문을 활짝 열고 붉은 톤의 아기 곰 세 마리가 그려져 있는 커튼까지도 걷어냈다. 순간 내 눈 각막을 손상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뜨거운 태양 빛이 확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가 내 방 커튼을 확 걷어낸 후유증인 셈이다.

 “가온아, 학교 안 갈 거니! 허구한 날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야. 너도 엄마처럼 열심히 해야지!”

 그녀는 매번 게으른 건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는 어투로 날 나무라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부지런함과 성실함 덕분에 내가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거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녀의 잔소리를 귀에 못 박히게 들은 지라, 귀찮은 나머지 한 귀로 흘렸다. 하지만 흰 스카프로 촘촘히 가린 어머니의 목만큼은 내 마음에 걸렸다.

 “근데……엄마, 목은 좀 괜찮아?”

 “다행히 붓기는 사라졌더라고. 피부색은 좋지 않지만, 아프지는 않은데…… 학교일 때문에 병원에 갈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네.”

 그녀는 하던 말도 맺지 않고 얼굴까지 찡그리며, 현관문으로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없거나, 거기에 쓰는 게 아까운 거겠지.’

 나는 그녀의 말이 이렇게 풀이됐다. 하지만 이렇게 매사 알뜰하고 성실한 어머니인데도, 아들이 밥을 챙겨 먹고 다니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요즘 들어 학교 일로 무지 피곤했는지 아들 밥 주는 것도 잊은 채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곤 했다.

 어젯밤엔 전기밥솥에 쌀 한 톨도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그녀가 반쯤 먹다가 말아버린 퉁퉁 불은 국수만이 있을 뿐이었다.

 평상시에 내가 국수 먹자고 하면, 그녀는 얼굴을 붉혀가면서까지 우리가 새냐?’고 질색했었는데. 하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며칠 전부터 국수 먹는 횟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홧김에 음식물 쓰레기통에 국수를 박듯이 버렸다. 그 대신 배고픔에 못 이긴 나머지 식탁에 있는 쿠키를 주워 먹고 자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먹었던 과자 봉지가 그대로 식탁 위에 있었고, 부서진 쿠키 한 조각은 거실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지각이 예감된 터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얼른 쿠키를 두세 개 주워 먹고, 남은 건 봉지에 담아 가방 깊숙이 넣었다. 학교에 가서 먹어야 했다.

 나도 모르게 순간 아버지 없는 설움이 복받쳤는지,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내 볼을 타고 흘렀다. 나는 툭툭 털어버렸다. 나에겐 어머니가 있지 않은가.

 그래도 쿠키 한두 조각 덕분인지 몰라도 뱃속이 차츰 따스해지면서 힘이 솟아났다. 잘 보이지 않던 낡은 벽시계도 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새끼손가락만 한 배터리로 작동되는 그 시계는 1110분을 가리킨 채 죽어 있었다. 심지어 저 멀리 보이는 거실에 있는 괘종시계도 멈춰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바닥에 뎅그러니 떨어져 있는 베이지색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시계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텔레비전을 켜자마자, 스포티한 간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기자가 등장했다. 그답지 않게 입에서 격양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국 아칸소주 비브시에서 자그마치 5천 마리의 찌르레기 붉은 날개의 검은 새가 처참하게 죽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떼죽음입니다…….”

  이 보도와 함께, 지붕과 거리에 새의 시체로 뒤덮인 영상이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 세상에나……하느님 맙소사!’

 나는 깜짝 놀라 뒤로 주춤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버드 스트라이크로 수십 수백 마리의 새가 죽는 건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였다.

 새들이 불쌍했지만 기상 이변 탓이니 애써 생각하고, 스크린 오른쪽 모퉁이에 있는 디지털시계를 봤다. 정확히 742분을 표시하고 있었다. 새떼 죽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슴이 답답해 올라왔다. 나 말고는 그 다른 어떤 것도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가람국제고는 지각을 한 번이라도 하게 되면 매몰차게 불성실한 학생으로 낙인찍고, 학생부에도 기록하는 등 엄격한 학사관리를 해왔기 때문이다. 나를 이 같은 학교로 보낸 어머니가 오늘따라 더욱더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8시까지는 학교에 도착해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긴장한 나머지 갑자기 재발한 수전증을 느껴가며,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어 올려 끄기전원 버튼을 누르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또 다른 영상이 내 눈을 사로잡았고, 기자의 목소리도 어김없이 흘러나왔다.

 “오늘이 2005년에 서거한 에른스트 마이어의 추모 날입니다. 20세기 다윈으로 불렸던 그는 세상이 순수 인간 중심으로만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한때 큰 반항을 불러일으킨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 출신 진화생물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보도가 흘러나오자마자, 생중계였는지 대중들의 피켓시위와 에른스트 마이어의 화형식도 거행됐다. 비판의 음성들이 거세게 나오면서, 기자는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 만 것이다. 아마도 광신적인 창조론자들에 의한 시위인 듯했다. 그의 모습을 한 인형이 검은 연기와 함께 활활 불타올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들과 마주하고 있는 반대편 광장에선 그를 천재 과학자로 부르며, 축제의 한마당을 열고 있었다.

 에른스트 마이어……. 지금은 저세상으로 간 조류학자인 아버지가 그 때문에 한때 불면증도 걸렸다고 했다. 기독교 열성 신자인 아버지는, ‘인간은 신이 사랑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동물과 동격.’이라는 에른스트 마이어의 말이, 그를 항상 괴롭혀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실 나는 에른스트 마이어에 대해선 아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그땐 아버지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단지 세상에 주목받고 싶어서 상식과 배치된 말을 떠들어댔다고 생각될 뿐이다.

 아니, 세상이 순수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지, 그러면 상식적으로 강아지, 참새, , 고양이, 반인반수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억지 논리를 아버지가, 그것도 학자나 되는 분이 머리를 싸매며 고민까지 했다는 게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는 그렇지만……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그를 어떤 누구보다 싫어한다.

 나는 그가 싫은 이유를 다윈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다윈은 내 턱을 내갈긴 알미안처럼 재벌 2세쯤 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평생 돈 적정 없이 자신의 연구에만 집중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다윈은 나처럼 배고픈 사람들이 스스로 돈 벌면서 학자가 되겠다고 한다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아마 그는 연구에 전념하고, 논문이나 쓸 것이지, 학자가 밥벌이는 왜 걱정하고 난리야!’라고 말도 안 되는 싸늘한 조언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적이지도 않은데다가, 현실도 모르는 돼지 같은 학자 나부랭이 다윈! 그리고 에른스트 마이어!’

 이 같은 생각에 넋 놓고 있는 사이, 시간은 정처 없이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얼른 텔레비전부터 꺼야 했다.

 다행히 시간이 많이 지나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허겁지겁 양치질하고 고양이 세수를 한다 해도 10여 분 정도밖에는 남지 않는다. 백 미터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뛰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머니의 탓으로만 돌릴 정도로 뻔뻔하지도 못했다.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교문을 향해 무조건 뛰었다. 공기는 축축했고, 찬 기운이 돌아 어깨를 잔뜩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울퉁불퉁한 자갈밭의 오솔길을 뛸 때가 가장 힘들었다. 다행히 운동화 밑창에는 신기술의 공기 조절 쿠션이 있어 아프지는 않았다.

 어제 저녁도 뛰고, 오늘 아침도 뛰고……. 남들이 보면 마치 육상종목의 금메달 유망주로 오인할 정도였다.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뛰다 보니 어느덧 멀찌감치 엷은 갈색의 조금은 녹슬어 보이는 우리 학교 교문이 보였다. 내 뒤로 한두 명 정도가 뒤져 오고 있을 뿐이었다.

 멈춰 서서 손목시계를 보니 다행히 1분 정도 남아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뛰려고 앞을 내다보니, 학생들이 교문 앞에 구름처럼 모여드는 게 아닌가. 예전 같으면 이 늦은 시간에 교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있다 해도 턱수염과 콧수염이 덥수룩한 경비실 아저씨가 교문을 닫기 전에 빗자루로 낙엽 정도 쓸고 있었을 텐데.

 자세히 보니, 교문 앞 게시판에 학생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점차 늘어나더니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운 좋게도 지각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일까?’

 어슴푸레한 공지 글이 궁금해졌다.

 나는 태연한 척하며, 게시판 앞에 모여 있는 그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내가 남자였지만, 호리호리한 몸매를 갖고 있는 덕분에 손쉽게 이리저리 틈새를 뚫고 게시판 앞까지 갈 수 있었다. 바로 내 코 가까이까지 게시판이 다가왔다. 선명했다.

 

공지합니다.

한스 선생님이 오늘부로 부임합니다.

 

 한스 선생님이 부임한다는 공지였다!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니, 기대 이상이었다. 공지 아래에는 그의 화려한 이력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학생들의 환호성이 가난한 음악가의 교향곡처럼 애절할 정도로 학교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축제 분위기였다. 특히 졸업반으로 보이는 선배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들은 왜 한스 선생님이 교사직을 파면 당했었는지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로지 졸업 후에 명문대학을 보내줄 구세주가 온 것에 대한 기쁨만을 누리고 있는 듯했다. 나도 사실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어떤 이유로 파면 당했던지 간에 내 알 바 아닌 거였다. 나는 원하는 대학 가서,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새들을 연구하며 살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교실로 들어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내 옆쪽에서 아니, 아주 가깝게 수인이도 게시판 글을 읽고 있었던 게 아닌가!

 그녀는 에메랄드 숲에서처럼, 뭔가를 슬퍼하면서 걱정스러운 듯 우두커니 게시판만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내가 옆에 있다는 건 알고나 있는 건지. 나는 순간 그녀에게 말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우리 사이는 비밀이었고, 어제오늘 갑작스러운 그녀의 심경 변화에 어리둥절하기도 해서였다. 그때 내가 말을 걸었다면, 그녀는 펑펑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난 조용히 아무 일 없는 듯, 따사롭게 비추는 한줄기 주홍빛 햇살을 등진 채 터벅터벅 교실로 들어섰다. 그녀도 한동안 서 있더니, 체념한 듯 교실로 발을 옮기는 모습이 내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수업이 끝나면, 못다 한 얘기를 해보자. 마지막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 그 소리는 나의 고민, 아니 고통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인이를 언제라도 만나게 해줬다. 게다가 그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만큼은 만끽하게 해줬다. 이게 오래 지속될지, 못할지는 도저히 그땐 예감할 수 없었다.

 오늘도 운동장엔 어제만큼이나 새들이 날아들어 매가 연상되듯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나는 모든 걱정거리들을 떨쳐낼 것처럼 힘껏 기지개를 켰다. 별 탈 없이 오늘 하루가 이렇게 흘러가는 듯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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