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7] 카나리아의 흔적

728x90
반응형

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5

 

 여하튼 수업시간에 내 눈을 거슬리게 한 것은, 서영이와 알미안이 흠뻑 빠져서 하는 날개 달린 종족게임은 물론이고, 또 있다면 다름 아닌 그들이 즐겨 읽던 무녀란 책이었다. 그들은 그 책을 선생님 몰래 읽어가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겨드랑이 속에 5센티미터 크기만 한 날개가 있는 무당이 있다.’는 황당무계한 대목이 그들을 무녀 책에 홀리게 만든 거였다.

 ‘그들은 그 날개로 무녀가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설마 날개의 위쪽은 곡선이어야 하고, 아래쪽은 직선으로 돼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들은 아니겠지.’

 유체의 속력이 증가하면, 압력이 낮아져 떠오르게 되는 비행(飛行)의 원리를 설명한 스위스의 수학자 요한 베르누이를 그들이 알 턱이 있겠나, 싶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그때만 해도 나는 그들이 학교에 굳이 올 이유가 있을까 싶은 철딱서니 없는 부잣집 애라고 여겼다. 특히나 말 많고 거친 알미안은 자신의 아버지가 무기 밀매업자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아버지의 한 달 수입이 무려 억대라는 소문도 그의 입을 통해서 학교에 퍼져 나갔다. 도서관 2동도 그의 아버지의 후원으로 시공되고 있는 걸 보면, 아주 근거 없는 헛소문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알미안은 공부 잘해봤자 소용없다는 식의 말들을 자주 늘어놓곤 했다. 하지만 그도 가끔은 복리로 은행이자를 계산하는 수학문제가 나올 땐, 누구보다도 집중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돈밖에 모르는 고리대금업자 같았다.

 그의 장래희망도 아버지처럼 무기 밀매업자라는데……. 재산깨나 있으니 부럽기도 하지만, 나는 이들의 값싼 매력에 동화되기는 싫었다.

  그런데…… 날개 달린 종족게임의 스토리도 그렇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그들이 즐겨 읽던 무녀책이 나에게 섬뜩하게 다가올 줄은 그때만 해도 도저히 알기 어려웠다.

 

  운 좋게도, 아니 거꾸로 운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소나기를 몰고 올 먹구름에 묻혀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촌스러운 가난뱅이하고는 말 섞기조차 꺼리는 콧대 센 여배우가 우리 반에 있어서다. 그녀의 얼굴은 갸름했고, 서구적인 코에 개미처럼 잘록한 허리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몸에 꼭 끼는 민소매 옷은 그녀의 어린 가슴을 봉긋 돋게 했으니……. 게다가 방송사의 청소년 신인배우상은 당연히 그녀의 몫이 될 정도였다. 중세 시대였다면, 절름발이 늙은 마부라도 데리고 다닐 영락없는 영주계급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어리바리한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녀에게서 어떤 황홀경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수업 때면, 서영이와 알미안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잠 속에 파묻혀 있었다. 얼굴이 아밀라아제 소화액이 담뿍 담긴 침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것도 모르는 채……. 어떨 때는 남 보기 싫을 정도로 그녀의 속눈썹 마스카라 화장마저도 침에 녹아 눈가에 번져 있었다. 그녀의 치솟는 인기에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금세라도 꺼질 거품 매력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내 자신도 그녀와 엇비슷했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녀보다 여러 면에서 학업 부담이 더 있을 법한 나에겐 자존심이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며칠 전 제주비행 길에 겪었던 괴이하고 찝찝한 뱀의 독 기운을 애써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졸린 눈을 비벼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내 자신이 의심이 됐는지, 에머튼 선생님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손거울을 가방 속에서 바스락거림조차 없이 꺼내 내 목 주위를 이리저리 보았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뱀의 독침 자국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휴, 나도…… …… 바보군.’

 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때의 일을 완벽한 꿈으로 단정해버렸다. 점점 나의 눈은 또렷해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멍한 기운이 몸속에 맴돌고 있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