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제1장
희미한 기억 속에서
1
인천 국제공항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기 OZ8909편.
여객기는 어젯밤부터 그칠 줄 모르는 가랑비를 스치며, 거침없이 활주로를 지나 날아올랐다. 비행선 아래에서 엔진이 포효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꺼진 지 오래된 내 호주머니 속 휴대 전화기의 벨소리가 마치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우와! 새 등에 올라타면 이런 느낌이겠지. 마치 흰 몸에 검은 날개깃을 가진 황새 같아.”
승객들은 저마다 여객기가 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에 대해 한목소리를 냈다.
‘흠, 새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어른처럼 헛기침하고 이들의 탄성을 능글맞게 웃어 던졌다.
맑게 닦인 창문 밖에는 기름때가 얼룩진 작업복을 입은 비행기 정비사 둘이 활주로를 떠나지 않은 채 한동안 가만히 서 있는 게 보였다. 이미 활주로에서 벗어난 비행선에서 정비사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건, 기이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내 두 눈이 의심스러워 양손으로 허둥대며 비벼봤지만, 더욱 선명해질 뿐이었다.
그들은 근심 어린 눈빛으로 내가 타고 있는 여객기를 쳐다보는 듯했다. 사냥개처럼 날카로운 눈빛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난쟁이와 엇비슷하게 작아 보이더니, 피어오르는 구름에 가려 자취조차 사라져버렸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검붉은 안개가 짙게 깔리더니 날렵해 보이는 이 비행기에 어림잡아 200여 마리나 되는 새떼가 느닷없이 달려들었다. 새들이 눈이 멀었거나, 정신 나간 테러범 같았다. 새들이 여객기 엔진에 빨려들면서 새들의 붉은 핏줄기가 가랑비에 섞여 이리저리 천공에 튀었다. 사람만큼 큼직한 새도 간혹 허깨비처럼 ‘환영’으로 다가왔다. 이들은 암살자처럼 보였다. 슬슬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승객 여러분들, 제발 진정하세요! 안전벨트는 단단히 메셨죠?”
승무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연이어 270여 명의 승객들의 거친 비명과 비행기 엔진의 요란한 굉음이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천신의 주사위놀이가 시작된 거였다. 여객기가 좌우로 거칠게 흔들렸다. 다들 하얗게 질린 얼굴들이었다. 모처럼 제주 여행으로 이 여객기에 탑승한 나에게 새들이 떼거리로 지옥 같은 마술을 거는 듯했다. 겁이 더럭 났고, 막막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여객기가 흔들리면서 불행하게도 나는 내 머리가 의자 왼쪽 뾰족한 모서리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마자 그만 나의 넋이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말로만 듣던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의 증상들이었다.
‘엄마는 살아있겠지…….’
옆에 함께 앉아 있던 어머니의 거친 비명 섞인 숨소리는 점점 작게 들려왔다. 비행기의 엔진을 뚫는 것 같은 날카로운 쇠의 마찰음도 내 귀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더니 안개 낀 검붉은 천공이 자취를 감추고, 아주 급히도 흰 원색의 천공이 내 앞에 드리워졌다. 다채로운 깃털을 지닌 새들이 나를 감쌌다. 이들 너머 폭이 30센티미터쯤 되어 보이는 기내 한 원형의 유리 창문에 ‘클․레․멘․스’라는 글자가 붉은 피로 물들여 흐릿하게 적혀 있는 게 보였다.
★
내 눈앞이 더욱더 어둑해져만 갔다. 갑자기 피를 흘리는 전쟁이 내 눈앞에 잔인하게 그려졌다. 어디에선가 나팔소리가 고요히 두세 번 길게 들려왔다. 불까지 먹는다는 꼬리털이 긴 푸른 빛깔의 화식조가 땅거미 진 하늘에 날아들었다.
언뜻 보기에 화식조의 가운데 발톱은 칼날처럼 예리했고, 눈빛마저 싸늘했다. 그것의 보랏빛의 머리는 투구처럼 꽤 두껍고 단단한 가죽으로 뒤덮여 있었다. 갑옷 입은 병사들이 휘두른 어떤 단도도 이를 뚫거나 찢기 어려워 보였다. 그 새는 근육질 다리에 덩치도 워낙 크고, 육식동물까지 한 번에 먹어 치울 포유류의 주둥이처럼 부리까지 날카로웠다. 그것의 부리에 머리를 쪼인 병사들은 붉은 피로 눈앞이 가린 나머지 이렇다 할만한 반격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마침내 그들은 가파른 암벽 아래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면서, 이리저리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날지 못한다는 화식조가……’
나의 기억도 어두워졌다. 어디에선가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흙바닥을 디디며 황급히 뛰어가는 말발굽의 요란한 소리, 그리고 군중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한껏 뒤섞였다. 그러더니 안개가 깔리듯이 희미해져 갔다. 한 늙은 여인의 배신당한 것 같은 피 섞인 절규도 어렴풋이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어느덧 피비린내는 사그라지고 누군가의 음성이 애처로우면서도 다급하게 들려왔다.
★
“가엾은 가온이……”
‘뭐? 가엾다고? 지긋지긋한 나의 가난 때문이겠지. 근데 이 여인은 누구지? 내 앞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비쩍 마른 아줌마인가? 설마……. 날 계속해서 부르는 이 여인의 목소리는 더없이 달콤하면서도 왠지 처량하네.’
“당신의 열정을 갖고 싶어……. 왕가의 골짜기로 같이 가자고요.”
‘으이그, 예의도 모르는 것아! 잘 지칠 줄 모르는 내 열정마저 빼앗아 간다고? 유일하게 남은 나의 자산인데…… 그건 안 되지. 쳇, 왕가의 골짜기는 또 뭐야.’
나는 혼잣말로 불만스럽게 구시렁댔다. 그러고는 턱을 괴고 있던 왼손을 내리고 구겨진 카키색 체크무늬의 웃옷까지 펴가며, 정신을 좀 더 가다듬었다. 하지만 누군지 모르는 그녀의 입에서 풍겨 나오는 지독한 시신 썩는 냄새가 나의 코끝을 진동시켰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어휴, 꼴도 보기 싫어요.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담.”
나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힘없는 목소리만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참을성 있게 자세히 들여다보려 했다. 에메랄드빛 망토를 입은 한 아담한 여인이 내 앞에 아른거렸다. 내 앞좌석의 코골이 중년 부인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멀리서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구슬픔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청명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하며, 날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다소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엷게 미소를 지으며 귓가로 살며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내 또래나 많게는 20대 초반쯤 되어 보였고, 넓고 가지런한 이마와 오뚝 솟은 코에 엷은 흑갈색머리였다. 희끗희끗한 새치 따윈 불필요해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하얀 천공이 오렌지빛 수채화 물감으로 흠뻑 물들인 천공으로 뒤바뀌더니, 그녀는 새처럼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은 듯 자유로워 보였다. 단지 그녀의 간절하고 절박한 눈빛만은 느껴졌다.
나는 혼미한 정신에 점점 졸음까지 쏟아져 와, 손에 쥐었던 반쯤 차있는 콜라 캔을 여객기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도 잊고 말았다. 마치 콜라 캔은 비행기 몸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살아 있는 것처럼 통통 튀기더니 한 모퉁이에 낡아 보이는 갈색 구두 한 짝에 살짝 부딪히고서야 기내 바닥에 멈춰 섰다. 그 갈색 구두가 왜 여기에 있는지 도저히 알기 어려웠다. 그것도 한 짝만이…….
이제는 그녀를 자세히 들여다볼 여력조차 없었다. 가느다란 실눈을 뜨고 쳐다보기만 했다. 그녀의 살짝 벌어진 입에서 나는 고약한 시신 썩는 냄새로 구토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그것 빼고는 영락없이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신비스러운 요정에 가까웠다. 나처럼 연약하거나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우아한 티가 물씬 풍긴 건 분명했다. 위엄이 가득한 한 나라의 여왕처럼 말이다. 게다가 그녀의 봉긋 오른 가슴만큼은 날 설레게 했다. 시신 썩는 냄새만 풍기지 않았어도, 나는 곧장 그녀에게 달려갔으리라.
그런데 마치 그녀의 흠집 하나 없는 신비스러운 망토는 새파란 하늘을 등지고 유유히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처럼 보였다. 내 옆에 잘게 부서진 부싯돌이라도 있으면, 은은한 등잔불이라도 밝혀 더 자세히 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
‘뭘까?’
나는 억지로 별 게 아닌 듯이 눈썹을 치켜 올리려 했다.
나는 현실성 없는 생각을 하거나, 애써 평범한 일들을 기이하게 꾸며 이야기하는 이들과는 상종하기 싫었다. 가끔은 몸서리도 쳐졌다. 하루하루가 힘들어 잠시라도 긴장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리거나 생존조차 하지 못할까 봐서다. 기인한 신화 같은 이야기들은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자들의 사치 정도로 여겨왔다. 나의 생각은 늘 이렇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이처럼 치밀어 오르는 호기심을 억누르려면, 엄청난 양의 진통이 뒤따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촘촘히 주름진 ‘뇌’의 활동은 맥없이 멈춰가고 있었다. 어느새인가, 갑자기 망토를 입은 제법 성숙해 보이는 여인이 네 발 달린 하얀 실뱀으로 돌변하여 나의 매끈한 목을 잽싸게 휘감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저항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 뱀이 한 자 넉넉히 되는 긴 혀를 쭉 내밀어 뱀파이어의 긴 이빨을 내 목에 깊숙이 꽂듯이 푹 박았다. 그러더니 내 목의 그물망처럼 얽히고 섞여 있는 실핏줄을 뚫고, 그 속으로 분수처럼 끈적거리는 독을 내뿜는 게 아닌가. 독 말고는 예측되는 게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내 심장 박동은 요동치기 시작했고, 몸은 급격히 팽창해갔다. 조금 전에 들렸던 요란한 말발굽 소리도 다시 내 귀에 울려댔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대도, 밖으로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등골이 오싹했고, 모든 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덧 실뱀의 은밀한 ‘쉿쉿’ 소리는 점차 누그러지고, 내 몸에서 빠져나간 혼이 되돌아오듯 어디에선가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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