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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6] 카나리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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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3

 

 

 

 

 검푸른 암흑 속에서 두 사람의 밀담이 들려왔다.

 한 사람은 그의 어깨가 피투성이로 비행기 날개에 찢겨 있었다. 여왕의 자태를 한 다른 이는 어디에도 상처 하나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온몸에 땀이 흥건해 있었다.

 “네가 호루스의 자손이냐?”

 여왕의 모습을 한 여자가 애써 앞으로 팔짱을 낀 채, 자신의 신하에게 대하듯 말을 건넸다.

 “,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병원에 긴급 후송될 정도로 어깨에 피를 흘리고 있는 젊은 남자가 아픈 내색을 전혀 하지 않고, 정중히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몇 명 정도가 죽었느냐?”

 여자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씁쓸하게 그에게 물었다.

 “지금 인원을 파악하고 있는데…… 제일가는 공격대장이 죽은 것 같습니다.”

 젊은 남자는 암살범들을 지휘하는 통솔자 같았다.

 어떤 빛줄기도 이들의 대화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타깝군. 하지만 우리는 중대한 임무를 완수하지 않았는가? 분명 그는 크리스 왕족이었고, 이젠 그가 우리 편이 될 수 있을 걸세. 거친 비행기 엔진을 뚫고 그에게 우리의 마술을 걸었잖은가. 그가 공격대장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 거라고 믿네. 너도 몹시 다친 것 같은 데…… 수고 많았네.”

 여자는 젊은 남자를 위안하듯 말했다.

 “…… 그런데 그는 갈색 구두 한 짝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 아닙니다. ……리고…… 제 몸에서 피비내와 공격대장의 시신 썩는 냄새가 나서, 밖에 나가봐도 되겠습니까? 크리스 왕족은 인간을 이길 병법을 찾아 다시 태어날 겁니다.”

 젊은 남자는 이렇게 답례하곤 의기당당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여자는 그때서야 팔짱을 풀어 내리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여자는 한동안 자신의 왼발에 없는 갈색 가죽 구두 한 짝을 생각하고는 깊은 한숨을 연이어 몰아 내쉬었다. 한참을 지나서야, 여자도 시신 썩는 냄새가 그녀의 온몸에 배어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가랑비에 젖은 웃옷을 벗어들고 오른 켠 구석에 있는 샤워실로 발을 옮겼다.

 

4

 새 학년 첫날부터 지각하는 건, 남보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나에게는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평상시에 눈 뜨면 일어나기 싫어 어머니가 작년 여름의 끝물에 값싸게 산 포근한 목화솜 이불 속에서 뭉그적대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이 바로 불행히도 새 학년 첫날이었던 거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이불도 개지 않은 채, 내 딴에는 늦지 않으려고 몸을 둥글게 말아 정신을 차리려 했다. 그러고는 침대 머리맡에서 어머니에게 아침밥을 달라고 졸라댔다. 그녀는 감자껍질을 바삐 깎다가 나의 다그치는 말을 듣다가 그만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 너 때문이야! 네 녀석이 왕이라도 된 줄 알아! 이 아까운 감자, 어떡하누. 피에 얼룩지는 바람에 버리게 생겼잖아! 나도 늦었다고!”

 어머니는 날 나무라다 울화가 더 치밀어 올랐는지, 침대를 미처 떠나지 못한 나에게 달려왔다.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난데없이 내 등짝을 신경질적으로 철썩 때려버렸다.

 “아야, 엄마, 왜 그래! 난 엄마가 아직도 자고 있는 줄 알았다고!”

 “뭐라고? 이놈아, 음식 하는 소리 못 들었어! 지금 내 손에서 피나는 거 안 보여!”

 “……, 알았어. 미안하다고요.”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초등학교 교사라서 지각해선 안 되는 나 같은 처지이다 보니, 허구한 날 아침이면 이렇게 전쟁을 치른다. 그런데 오늘처럼 그녀의 손가락에서 피까지 나는 건 거의 흔치 않은 일이었다.

 “……엄마, 다쳤어?”

 그녀는 내 말에 대답 대신 입술만 지그시 깨물었다. 나는 급히 거실 한쪽 모퉁이에 쓸모없어 처박아 놓았던 의료상자와 붕대를 들고 다소 진정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손이 칼에 깊숙이 베였는지 피가 쉽게 멈추지 않고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깜짝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먼저 의료상자에서 솜을 꺼내 그녀의 손에 갖다 대려 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목에 눈이 갔다.

 그녀의 목 언저리가 고무풍선처럼 부어 있다 못해 비둘기의 목처럼 검푸르게 변해있었다. 봄방학 때 비행기 사고 직후 그녀의 목이 발갛게 부어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엄마, 아직도 목이 안 좋아?”

 “…… 이거…… 아프지는 않은데, 병원 가봐야 하는 건가? 시간도 없는데. 피부과를 가야 하나?”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좀 진정이 되었는지 간단히 손에 약을 바르고 방수밴드를 대충 붙이고는 얼른 나에게 멸치가 곁든 감자국과 밥을 챙겨줬다. 하얀 붕대는 낯선 손님처럼 쓸모없이 식탁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녀가 몹쓸 병이라도 걸렸다는 걸 진단받게 되는 날엔, 우리 집은……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하는 것조차 끔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생활하기조차 빠듯한 우리 집 살림이 거덜 날 게 뻔했다. 아마 그녀도 왠지 겁났는지 병원 문턱에 들어서는 것마저도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정말 가난은 불편한 거 이상으로 눈물겹고 슬픈 거였다.

 어느새 벌써 거실에 있는 조그만 괘종시계가 730여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적어도 8시 전까지는 교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녀는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고는 방문을 걷어차다시피 하며 집 밖으로 나갔다. 나도 허겁지겁 서둘러 학교를 향했다. 나는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10여 분 일찍 학교에 도착한 걸 알고는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 마음을 이미 아는 것처럼, 넉넉지 못한 손수레 수리공 아들로 태어난 하이든의 교향곡 102‘B플랫장조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게다가 목청껏 재잘거리는 친구들의 목소리에 기분이 조금이나마 상쾌해졌다. 햇살도 눈부셨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쉴 틈 없이 나의 가난처럼 지긋지긋한 수업이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목소리만 들어도 눈이 스르르 감기는 오늘 마지막 7교시, 에머튼 선생님의 영어독해 수업이 시작된 것이다. 내 눈은 무거워져만 갔다. 내 자신이 마치 수면제를 과도하게 복용한 것처럼, 잠에 취해갔다. 무덥지만 썰렁하고 차가운 기운까지 맴돌았다.

 나는 막상 정신을 차리고 수업에 전념하려 해도,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무의식 세계로 끊임없이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내 귀청을 울려댔고, 늙은 여인의 절규도 들리는 듯했다. 며칠 전 버드 스트라이크가 있었던 봄방학 때가 연상됐다.

 그때의 충격의 증상들이 재발하려는 듯싶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이렇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만의 밀실에서 탈출해야만 했었다.

 사실 나뿐만은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특히 왕처럼 구는 부유한 학생들이 많은데다가, 전국에서 공부는 상위권을 맴돌기에 잠과 힘겹게 싸우려고 발버둥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학업 스트레스나 나 같은 외상으로 정신적 이상증세를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예외 없는 법칙은 항상 있기 마련이었다. 윤리 수업에서 인상 깊게 배웠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오랫동안 참된 진리라고 믿어온 마니교에 환멸을 느꼈던 것처럼, 실망스러운 법칙들이 조금씩 생겨나지 않는가. 아니, 애당초 기대를 걸지 말았어야 했던 일들도 많지 않은가.

 큼직한 궤짝처럼 생긴 교탁 앞에 있는 몇몇 아이들, 특히 속눈썹이 유난히 길어 보이는 서영이와 말 많고 다소 성격이 거친 알미안은 아예 거의 책상에 눕다시피 졸다가 집에 간다. 때론 장하게도 그들이 기운을 차리고 깨어나 있다 싶으면, 교과서 대신에 반나체의 날개 달린 사람과 흉물이 등장하는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거나, 손때로 꼬질꼬질한 다른 책들을 펴대기 일쑤다.

 그들은 수업이 끝나기가 바쁘게 선생님들의 눈을 교묘하게 피해 딴짓했던 걸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랑삼아 떠들어대곤 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 게임 속에 등장하는 날개 없이 태어난 종족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한참 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일순간에 나의 얼굴 표정은 일그러지고 말았다. 나는 숱이 제법 많은 내 머리카락을 스스로 헝클어뜨렸다.

  이 녀석들은 정말 제정신일까? 게임 속의 세계와 현실을 언제쯤 구별할 수 있을……. 아마 미래의 꿈과 호기심 따윈 없을 거야.’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이틀쯤 지났을 때였다. 하루 내내 그들의 모습이 내 마음에 걸렸다. 알미안은 학교에서도 소문난 싸움꾼인데다가, 그의 아버지의 위력도 대단해서 반 친구뿐 아니라, 선생님도 그에게 어떤 조언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5교시 생물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들을 위한답시고 오랜 시간에 걸쳐 충고를 해댔다. 결국 우려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나의 세치의 혀가 그들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했나 보다. 그들은 머리를 조아리기커녕 나의 말허리까지 잘라가며 길길이 날뛰는 바람에, 나만 곤욕스러웠다.

 바로 그때 서영이는 얼굴만 붉히고 있었지만, 알미안은 흥분한 나머지 오른손을 번쩍 들어 날을 세웠다. 그러더니 피멍이 들 정도로 내 아래턱을 강하게 두세 번 연타를 날렸다. 나는 그의 손힘에 정신없이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주위의 반 친구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서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다. 하지만 알미안을 평소에 두려워했던 반 친구들은 얄미울 정도로 그 자리에서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나는 자존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신을 추스르고 기우뚱거리며 알미안을 향해 섰다. 그의 화가 풀릴 때까지 맞을 수밖엔 별도리가 없어 보였다. 나도 사실 그가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내 몸에 또 다른 나의 영혼이 스며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내 몸이 부르르 떨렸고, 새처럼 가벼워졌다. 왠지 모르게 반격하고 싶어졌다. 그는 저항하려는 내 모습이 건방져 보였는지, 또 다시 손을 들어 날 내치려 했다.

 나는 문득 바로 그 빈틈을 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이 교실바닥에서 높게 떠오르더니, 그의 허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아 들어 그를 책상 위로 던져버렸다. 그 순간엔 나는 유도 수업 때 게으름을 피우지 않은 결과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는 불쌍하게도 책상 위로 나뒹굴더니만 코를 바닥에 박고 쌍코피를 터트렸다. 당황한 그는 코를 휴지로 틀어막고는, 더 이상의 저항을 하지 않았다. 나의 거센 반격에 다들 환호성을 질러댔다. 다들 학업 분위기를 망치는 알미안에 대한 반감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서영이만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다행히 우리 반 친구들 빼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알미안과의 싸움은 들키지 않았다. 그 후로 가끔 교실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칠 땐, 서로 지지 않으려고 매섭게 쏘아보곤 했다. 반 친구들은 나를 그들의 수호신으로 여겼는지, 가끔 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강해진 내 모습에…… 내 자신도 당황스러울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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