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근 거 : 클레멘스의 예언 전문
#1. 서막
기원전 305년 11월 초, 캄캄한 어느 늦가을 밤.
차가운 칼바람이 불었다. 피바람도 거셌다. 어디에도 나약한 자들을 위한 배려와 용서는 없었고, 육신과 마음의 상처만이 가득했다. 모든 일들이 막막하기만 했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부하로 알려진 프톨레마이오스 장군 때문이었을까? 그는 가차 없이 나약한 이들의 소중한 걸 빼앗고, 스스로를 ‘구원자’로 칭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게다가 그는 예리한 눈매를 드러내며, 신의 형상이 그려진 고액의 화폐를 축적하여, 그 돈으로 새 발톱처럼 날카로운 막강한 군사무기까지 사들였다. 당연히 이웃 나라의 여린 여자마저도 그의 차지가 됐다.
결국 그는 천신도 질투할 정도로 거대한 힘을 갖게 된 것이다. ‘희생’이란 종교적인 말은 그에겐 무력해 보였다. 그런 그가 이집트의 거대한 영토를 큰 무리 없이 장악한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거동하면, 죽은 듯 엎드렸고, 모두들 긴장한 나머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정도였다.
그런데 그는 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그의 절친한 형제들 가운데 막내 동생, 크리스를 시기하고 학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크리스가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몸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왕족임에도 친교를 꺼려한데다가, 공기저항을 뚫고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서였다. 이 때문에 프톨레마이오스는 은둔적이고 날 수 있는 능력까지 겸비한 동생이 그의 절대 왕권을 넘볼 거라는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급기야 자신의 친 혈육인 크리스를 먼 이국땅으로 추방하고 말았다.
크리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마침내 인근 지역에 또 다른 왕국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는 화염이 터져 나오는 탄산구리가 섞인 신식무기로 그의 왕국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그는 동생에게도 권력 확장의 욕망을 과감히 드러냈다.
크리스의 오랜 여인으로 여겼던 가냘픈 미모의 젖가슴이 풍만한 젤로스. 그녀마저 프톨레마이오스의 막강한 힘에 매료되어, 크리스를 배신하기에 이르렀다.
‘유리구두 한 짝을 잃어버린 가엾은 신데렐라, 젤로스.’
크리스의 마음 한구석엔 항상 자신을 떠나간 그녀에 대한 슬픈 연민으로 가득 차올라 있었다.
#2. 태동
이처럼 어느 누구도 감히 털끝 하나 침범하기 어려운 프톨레마이오스의 전성기인 이집트 왕조 시절(기원전 4세기), 해질 무렵으로 기억된다. 어느새 불타오르는 적색 하늘빛이 사그라졌다.
이때, 주술사들을 시중들던 한 예언가인 노파가 왕가의 골짜기에서 천신으로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안위를 위협하는 환청을 들었다. 거짓을 유혹하는 마녀의 목소리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엉겁결에 천신의 거룩한 소리를 자신의 집게손가락에 피를 내어가며 어설픈 상형문자로 양피지에 기록했다. 양피지가 그녀의 피로 얼룩져, 마치 예리한 칼날에 피범벅이 된 어깨를 촘촘히 싸맨 흰 천 조각 같았다.
그녀는 놀란 가슴에 피로 붉게 물든 양피지를 품고, 궁정을 향해 자신이 손수 훈련시킨 흰말을 채찍질해가며 황급히 몰았다. 그러고는 친분이 두터운 궁정의 경비대장을 찾아 이를 전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안타깝게도 새들의 먹잇감이 즐비하다는 크렘린 호숫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더군다나 가랑비까지 내려 그녀의 시신을 흠뻑 적셨다. 그때만 해도 그녀의 시신이 묻힌 무덤이 어딘지 아는 이는 거의 없어 보였다. 단지 그녀의 죽음만큼은 누군가의 밀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프톨레마이오스의 시기를 받아온 날개 달린 크리스의 측근들 소행으로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변의 왕국 또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침탈을 받아 온 터라, 이들 왕국의 저항이라고 볼 여지도 충분했다.
여하튼 노파의 희생으로 전해진 이 양피지는 경비대장의 정성 어린 노력으로 회색빛 석기함에 보관되어 전수되어 왔다. 그러다가 1217년 8월 17일 중세의 저명한 기호학자와 언어학자들에 의하여 번역됐다. 1217년은 제5차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던 때였다. 어느 누구도 침범하기 어려웠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마저도 멸망한 후, 여러 왕들을 거쳐 크리스 왕족이 아닌 순수 인간 혈통의 말리크 알카멜이 집권한 때로 여겨진다. 그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휩쓸어 간 것처럼 보였다.
그때 긴 백발 머리를 한 당시 최고의 번역검수관 이노스 사케스(1154-1230)가 노파의 양피지 번역판에서 오역된 다섯 개의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이 오역으로 인해 왕좌의 위협을 느낀 이집트 군주 알카멜은 가차 없이 번역책임자 가일레 히도스 주교(1150-1217)에게 책임을 물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그마치 500여 명의 군중들이 밀집하여 에워 싼 서슬 퍼런 단두대에서 목이 달아나는 처참한 형벌을 받았다. 연약하고 가엾은 목숨이었다. 그 후에도 일곱이나 목이 잘려나갔다. 예리한 눈매의 알카멜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광경을 진지한 눈초리로 지켜봤다. 그는 자신이 손수 비싼 돈을 들여 한국 등지에서 사들인 청동재질의 첨단 군사무기를 실험하는 겸해서, 이들 일곱을 잔혹하게 죽인 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 하나가 ‘몸에 날개가 달려 있다.’라는 소문이 무성했고, 목이 달아나는 순간 ‘크리스왕’을 외쳐댔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정확하지는 않다. 별칭처럼 이집트 고대신화에 나오는 ‘호루스’로 전해 내려오고 있을 뿐이었다.
놀랍게도, 그의 죄명은 ‘잘못된 번역’이 아니었다. 노파가 남긴 피로 얼룩진 양피지 가운데, 날개 달린 사람들이 인간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극비의 병법 첫 장을 다른 데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그가 이 병법을 노파의 무덤 안에 감췄고, 그녀의 무덤의 장소를 상세히 지도로 남겨 뒀다고 하는데……. 하지만 호루스는 크리스 왕족 중에 지혜와 열정 있는 자만이 이 병법을 차지할 수 있도록 주문을 걸어놓았다. 지혜와 열정 중에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절대 그 병법을 차지할 수가 없었던 거였다.
열정만으로 병법을 차지해서 인간을 정복했다고 하더라도 지혜가 없다면,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또 다시 정복될 것이 뻔했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그 길을 차단한 그의 깊은 심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지도가 보관된 노파의 무덤이 있는 곳도 도저히 알기 어려웠지만, 날개 달린 사람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전해 내려올 거라는 추측은 가능했다. 아마 알카멜 군주도 이 사실을 아예 모르지는 않을 듯싶었다.
군주는 진상 조사를 꺼려했고, 오랫동안의 1, 2차 번역수정본 작업 끝에 1247년 4월 2일 자정 녘에 완성본을 내놓았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게 바로 예언가 노파 이름을 딴 ‘클레멘스 예언서’였다.
이 예언서는 호루스가 빼돌린 병법 첫 장을 제외하면, 57장으로 이뤄진 장대한 문서이다. 여기에는 날개 달린 사람들이 그들의 날개를 거추장스러운 옷 속에 숨기며, 이 세상 여러 도처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이들을 라틴어로 날개나 깃털을 뜻하는 ‘페나(Penna)족’이나 간단히 ‘페나’로 불렀다.
언젠가는 페나족이 이 세상을 지배할 거라는 예언도 거리낌 없이 적어 놓았다. 이것은 왕의 안위를 위협하고, 허황된 마술이나 마법의 환상을 키운다고 하여 기원후 7세기경 거의 대부분이 불에 태워 사라졌다. 현재 내려오는 내용들은 2장 정도에 불과하다. 이마저 국가기밀이라서 수십여 명의 장정조차 들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가 나가는 금고에 보관되어 전해져 내려온다는 데.
물론 이 금고가 있는 장소는 일급비밀로 되어 있고,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고 한다. 클레멘스의 모든 정황이 이렇게 맞아떨어졌다.
#3. 원본
클레멘스 2장의 전문을 마이크로 포토기로 촬영하여 휴대용 콘텐츠 저장 칩에 보관하고 있는 정보요원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극비이지만, 그들은 과묵한 입을 열어 그 내용 일부를 흘리고 다닌다는 전언도 있다. 그날만큼은 어디선가 카나리아의 맑은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유난히 비도 많이 내리는데다가 가로등의 불빛도 사그라진다는데……. 그들의 은밀한 말들은 천신만이 귀를 기울인 듯하다.
이러한 그들의 언어가 누군가에 의해 염탐되어 리코딩이 됐을 가능성은 당연히 희박하다. 몰래 그들의 의중을 면밀히 캐고 들어갔다 해도, 진실에서 한참 엇나갔을 듯싶다.
하지만 가온이의 눈으로 이것들은 본론으로 접어들고, 희미한 잔상들과 흔적들이 구체적으로 낱낱이 밝혀진다. 가온이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클레멘스의 번역책임자 히도스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또 바라건대, 심지어 이 글이 수기 정도에 불과하다고 폄하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아래처럼 ‘인간을 이길 병법’을 제외하고 드러난 전문 내용들은 가끔씩이나마 거리낌 없이 밝히려 한다.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전문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사료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클레멘스 1장(Cremense I)
내가 보고 듣는다. 페나들(날개 달린 사람)이 큰 북을 치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 저항한다. 인간권력의 영원한 종언을 알린다.
또 다른 페나들이 날아들었다. 금향로를 가지고 와서 그 향기를 이 땅에 뿌린다. 에메랄드빛 날개를 지닌 한 인간이 향로에 불을 담아 불을 먹는 새에 뿌린다. 그 새는 다 삼켜버린다. 천성이 날지 못하는 그 새는 인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날개를 활짝 펴 날았다. 하늘도 놀랐는지 천둥과 번개, 지진이 함께 일었다.
나팔 가진 장수가 한번 나팔을 부니, 피와 고름이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졌다. 수목의 절반이 탔고, 각종 푸른 풀도 죽어갔다.
나팔 가진 장수가 두 번 나팔을 부니, 공중에서 날아드는 새로 인하여 땅에 있는 모든 게 다 멸종해 갔다.
클레멘스 2장(Cremense II)
내가 또 보고 들으니, 힘센 다른 페나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데, 그 머릿속에는 열정이 있으나 잘 드러나지 않고, 그 얼굴은 태양과 같으며, 그 발은 붉은 새의 족이더라.
그의 분신인 아들 새가 이 땅 저 땅에 부르짖어, 페나들의 멸종을 분노하리라.
그 소리가 우레가 되어 하늘까지 이르느니, 마지막 나팔소리가 바다와 땅을 처참히 짓밟고 서 있는 인간들과의 전쟁을 또 다시 선포하리라. 칠흑 어둠을 이겨내리라.
- 출판된 단행본에는 각주로 상세히 설명 되어 있습니다.
'문학 Novel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Social Fantasy5] 카나리아의 흔적 (0) | 2020.11.12 |
---|---|
[Social Fantasy4] 카나리아의 흔적 (0) | 2020.11.10 |
[Social Fantasy2] 카나리아의 흔적 (0) | 2020.11.09 |
[Social Fantasy1] 카나리아의 흔적 (0) | 2020.11.07 |
판타지 소설 '카나리아의 흔적' 서평 소개 합니다 1,2 편 (0) | 2019.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