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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Commuication & Jornalism

[언론의 발자취 자료 27] “나꼼수는 언론을 경영해 봤는가”(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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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발자취 자료 27

“나꼼수는 언론을 경영해 봤는가”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CJI 연구소 운영위원장

 

딴지일보에서 제작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패널들은 정치, 언론 환경 등이 급격히 변화되면서, 그들의 모습도 변해갔다. 정계를 은퇴하기도 하고, 방송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이 글을 게재하는 이유는 언론 역사의 한 퍼즐을 맞춰보기 위한 것이지, 다른 이유와 변수는 없다.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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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12월) 7일 늦은 밤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에 ‘나는꼼수다(나꼼수)’ 진행자 정봉주 전 의원(민주당)이 나온다고 해서 나는 기대가 컸다. 그는 예전에 진보진영의 ‘월간 말’지 기자인데다가, 정론지의 대변격인 한겨레신문의 창간발기인이기도 해서다. 당시 이 언론들은 권력에 ‘쫄지’ 않았으며,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게다가 언론의 대안도 고민케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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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정치권과 사회의 부패상을 고발한 ‘월간 말’은 인터넷 신문 ‘민중의 소리’에 경영권을 넘겨준 이후, 2009년 3월을 끝으로 흔적조차 사라졌다. 또한 현재 ‘한겨레’ 신문은 보수신문이라고 칭하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조중동)’보다 발행부수가 적다. 독자의 구독률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일 것이다. 이밖에도 개혁성이 짙은 노동일보도 사라진지 오래다. ‘나꼼수’가 이들의 전철을 밟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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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2시쯤 나꼼수의 정봉주 전 의원은 어김없이 ‘끝장토론 프로’의 화려한 조명을 등지고 텔레비전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마자, 그는 우리사회의 언론에 대해 아쉬운 점들을 토로했다. 그는 거침없는 달변가였다. 내 속까지 후련할 정도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가 분석한 현 언론이 20-­30대 젊은이들에게는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언론을 경영해 본 사주나, 작든 크든 기업을 운영해본 이들이 볼 때는 그의 분석은 비현실적일 수 있었다. 한마디로 먼 이상향인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이상향을 동경하고 있지만 말이다. ‘나꼼수’ 중에 언론을 운영해 본 출연자는 이에 대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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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언론자유 지수에 대한 통계자료(2011 국제 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를 내놓으며, 우리 사회가 196개국 중 70위라며 언론자유의 제한 등을 지적했다. 또한 현 정부가 언론에 강한 제재를 가하는 듯이 논리를 폈다. 데이터에 근거한 그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잣대는 자본의 논리를 무시할 수 없는 현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편향된 것이라서 몹시 안타까울 뿐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언론자유 지수를 비교해보면, 당연히 경제수준이 높은 선진국의 언론이 후진국의 언론보다 자유롭다. 언론자유 지수를 인용하려면, 그 사회의 성장과 분배철학, 대외의존도, 경제적 관계와 수준 등도 고려해야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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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컨대 현 정부초기에는 과거 노무현 정부와 결연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 정부의 편이 된 일부 언론에 제한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언론 탄압 혹은 장악이 아닌, 국정 운영을 원활히 하기 위한 ‘편 만들기’로 해석될 여지는 없는 걸까. 또한 노무현 정부시절의 언론자유 지수가 지금의 정부보다 높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여러 데이터가 요구될 수 있지 않은가. 앞으로의 정부 언론관 분석도 마찬가지일 듯싶다. 현 정부초기 그 이후에도 보궐선거 지자체선거 등이 있었고, 지금(2011)은 총선 대선 등 선거가 임박해왔다. 매순간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언론에 대한 선거법 위반이 적용돼왔다.

 결국 그의 말은 언론에 대해 겉으로만 아는 이들에겐 찬사를 받았을지라도, 여러 모순을 떠안고 말았다. 나꼼수의 논리도 이 속에 있을 것만 같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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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말은 그러다 보니 여러 변수 가운데 단지 지배이데올로기 논리로 귀결시켜서 겉과 속이 다른 언론의 속성을 ‘수박겉핥기식’으로 해석해온 게 아닐까. 이는 정치적인 지배이데올로기를 너무 강조한 과거지향 언론분석이라서, 기업과 자본이 큰 역할을 하는 현시대에 맞는 해석과 분석 잣대가 절실히 필요할 듯했다.

 또한 그의 말들을 종합해 짐작해보면, 발행부수가 많은 ‘조중동’ 신문의 기사 보다는 시민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각종 진보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대체로 일리가 있고 감동적이다 라고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사건의 사실과 밀착하여 취재하다보면, 시민단체 등의 논리가 옳기 보다는 한 계층, 혹은 한 조직 군만을 대변했다는 편견을 지우기 어렵다. 시민단체의 주장만 믿고 기사를 썼다가는 오보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꾸로 보수단체의 입장만을 듣고 나온 보도도 같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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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적으로 언론은 진보 보수의 말들과 함께, 여러 사실들을 종합적인 통찰로 취재해 보도를 해야만 보다 진실에 근접하게 되는 수고로움이 따른다. 따라서 한쪽 측면을 서로 다르게 강조하다보니, 사실은 언론사마다 비슷할 수 있지만 논조가 다른 언론이 등장하게 된다. ‘사실’이 왜곡된 보도는 법정다툼으로 가면 그만인 것이다. 논조를 왈가왈부해가며 문제 삼는 건 서로 입만 아픈 꼴이다. 그래도 언론은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를 명확히 기술해줘야 하며, 반드시 반대편의 주장도 덧붙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이 아닌 사보, 즉 기관지형식이 돼 버린다. 나꼼수도 이 정도는 알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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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달리 언론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는 정부만이 아니다. 다양하다. 요즘 들어선 언론사의 재정 위기로 광고파이 확보에 비상이 걸려있다. 이에 따라 당연히 정부보다는 기업이 보도기사 논조를 뒤바꿀 여지가 충분하다. 그만큼 언론현장에서는 기업광고의 확보 경주로 사실상 정부보다는 기업이 언론을 장악했다는 우스갯말이 등장할 정도다. 언론 스스로가 광고의 빌미로 언론자유를 포기하는 셈이다. 이런 경우도 있지 않은가.

 앞으로의 언론은 더욱더 광고파이 확보에 치열할지도 모른다. 만일 ‘나꼼수’ 의 진행자 정봉주 전 의원이 나꼼수를 통해 자체적으로 ‘밥벌이’를 하려 한다면, 정부의 간섭 보다는 기업의 영향에 더 크게 노출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 요즘시대의 언론해석 잣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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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을 경영해 봐라. 그리고 현실적인 언론을 토대로 논해 봐라. 그 곳에서도 대안을 찾아 봐야 하는 것이다. 밥벌이와 단절된 언론은 과거 칼 마르크스도 해봤지만, 지속력이 없었다. 급기야 여유 있는 자들의 유희정도일 수 있다. 정론직필과 ‘기업광고 없는 언론’은 나의 이상형이기도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많은 이들이 희생해야 한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할 수밖에 없는 자들도 정론직필의 언론을 하며 밥을 먹을 수 있는 대안을 ‘나꼼수’가 말해준다면, 더욱더 그들의 언론은 책임 있게 빛이 날게 분명하다.

2011년 12월 CJI 연구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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