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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66] 카나리아의 흔적 : 맘껏 하늘을 날리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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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작가의 말

 

- 맘껏 하늘을 날리라

 

 

  나는 전업 소설가는 아니다. 하지만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이 책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을 쓰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마음만 다급해졌다. 그럴수록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뒤틀려갔다. 고질병인 편도선염도 불청객처럼 찾아와 내 몸을 뜨겁게 달궜다.

 그때가…… 마침 하늘이 노을로 붉게 물들어 갈 무렵일 듯싶다.

 나는 그즈음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남긴 글을 우연히 접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호재였다. 이 글들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면서, 내 몸의 열을 잊게 했고 마음속에서 쉴 새 없이 꿈틀거리는 마법적인 신비가 사실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가 쓴 책 옆에 가지런히 놓인 40페이지 분량의 잭과 콩나무. 가난한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잭이 콩나무를 타고 하늘나라에 올라가 거인의 보물을 훔쳤다는 기막힌 이야기가 적혀 있다. 나는 이 같은 영국 민화마저도 사실일 가능성을 열어 놓게 됐다. 천상의 세계에 도달할 큰 콩나무가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 망상만은 아니지 않을까?

 이 글들을 호기심 있게 곱씹은 그날, 나는 예수회에서 설립한 학교도서관 1층 로비에 있었다. 학자답지 않게 구청장의 선거를 도우며, 종교에 심취한 고대 사상 전공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밖의 기온은 한여름 날씨답게 푹푹 찌고 무더웠지만, 도서관 내부만큼은 적절한 에어컨 가동 덕분인지 땀 냄새 따윈 어디에도 없었고 상쾌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리고 있어도 그는 아무 연락도 주지 않아 조바심이 극에 달했고, 짜증이 서서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체념하는 방법을 항상 연습해 온 나는, 그가 교통체증이나, 급작스러운 발병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애써 생각을 돌렸다. 결국 나의 발걸음은 모퉁이를 돌아 자연스레 도서관 열람실로 옮겨졌고, 책벌레처럼 이리저리 낯선 책들을 찾아 책장을 넘겨댔다. 그때 먼지로 자욱한 누런 겉표지의 닳고 닳은 고서를 발견했다. 마치 그 안에 마법 주문서라도 있을까 싶어,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겼다. 아무도 이 책을 찾지 않아서일까? 페이지 곳곳마다 거미줄이 뒤엉켜 있었다. 나는 당연히 짧은 레이스 달린 얇은 옷소매로 정성스레 책에 묻은 거미줄과 먼지를 닦아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책이 바로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7년과 1881년에 집필한 미케네,일리어드였다. 그는 이 책들 안에서 신화 속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이처럼 자신감에 넘친 그의 주장은 나를 몹시 들뜨게 만든 것이다.

 심지어 그가 1868, 신화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트로이와 미케네의 유적을 발견했다는 후담은 날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내몰았다. 신화와 전설 속의 존재가 공상에 그치지 않고, 엄연한 역사 속에 있을 가능성이었다. “신화는 신성한 역사라는 말이 내 입안에서 맴돌다 나도 모르게 크게 내뱉고 말았다.

 허름한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것처럼, 신비스럽기도 하고 초라해 보이는 한 중년 남자가 내 목소리를 듣고 다급히 달려왔다. 멀리 흐릿하게나마 내 눈에 들어온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청빈을 강조한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도사 같았다. 설마 1200년대 수도사가 환생할 리가? 잠시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하는 이 도서관의 직원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조용하고 경건한 도서관에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오인 받은 것 같아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 정중히 인사부터 했다.

 그런데 그는 나의 어깨를 치더니 웃어댔다. 그는 다름 아닌 내가 애타게 기다린 고대 사상 전공교수였. 알고 보니, 약속 장소를 서로 다르게 알고 있던 거였다. 그도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어 책을 읽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한 손에 쥐어 든 책표지에는 민망하게도 알몸의 날개 달린 그리스의 니케 여신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경영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입장에서 광고홍보 이론을 강의한 적이 있었는데, 스포츠용품 브랜드 나이키니케 여신을 착안한 이름이라고 설명할 정도로 나에겐 아주 낯익은 그림이었다.

 이날 도서관 지하 1층 카페에서 그 교수와 골치 아픈 현실 정치는 물론이고, 빈부격차가 심한 우리 사회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인리히 슐리만의 글들이 계속 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니케 여신도 말이다.

 신화학에 대해서도 말을 꺼내고 싶었다. 하지만 종교성이 강한 그에게서 허구라는 일상적인 진단을 듣는 게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편도선염으로 내 목이 컬컬해져서일까. 그에게 이에 대한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다. 서로 다음엔 세속인처럼 술이라도 한잔하자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아마 그의 머릿속에는 나와 다르게 약주 대신 자줏빛 포도주가 먼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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