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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43]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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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5

 

 눈부실 정도로 에메랄드빛의 날개를 한껏 뽐내는 사람만큼 큰 현란한 새. 그 새가 어디에도 구속됨이 없이 자유롭게 녹음이 짙은 숲 속을 날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왕처럼 보이는 군주가 그 새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들 사이에 아이들이 태어났다……….

 “으으으…… 어찌 새의 성염색체가 사람과 일치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모르게 단순한 여과장치도 없이 괴성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다들 표정이 굳어져 있을 뿐, 내 괴성엔 아랑곳하지 않고 충격적인 장면 하나하나에 푹 빠져 있었다.

 한 아이는 에메랄드빛의 날개를 갖고 태어났고, 다른 아이는 날개 없이 태어났다……. 그들은 안타깝게도 매일 사소한 것까지도 참지 못하고 다퉜다. 슬프게도 그들이 성장한 후 전쟁이 일어났다. 그들끼리의 전쟁이었다. 마침내 날개 달린 사람들이 처참히 죽은 모습만이 영상에 비춰왔다.

 “실비아, 혹시 이게……

 “, 크리스 왕국의 태동 시점을 말하는 거지. 선사시대에 있었던 씨족연맹 국가……. 원래는 날개가 있든 없든 서로 잘 어울려 지냈는데. 그 후 서로 심하게 다투다가 시기와 질투심을 못 이긴 나머지, 날개 달린 우리들만의 공동체를 꾸리게 됐어. 그런데 불행하게 그 안에서도 날개 없는 이들도 태어났지 뭐야. 날개가 있다는 건, 능력이 많다는 걸 의미했어. 하지만 언제나 시기의 대상이었어. 많은 이들이 그때 처참히 죽었고, 그 후로 날개를 숨기며 살았어. 발각되면 그대로 죽었지. 우리가 날개가 있다 보니, 날개 없는 그들은 그 자신들을 끊임없이 위협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건데.”

 그녀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가기 바빴다.

 “……하지만 우리 부족 안팎의 날개 없는 그들은 마침내 동맹을 맺어 날개 달린 우리를 항상 무력으로 공격해왔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렇게 숨어 살 수밖에 없게 된 거야. 너무 고통스럽게도…….”

 실비아는 이 같은 피해의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간들과의 전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도 크리스 왕족의 후손이니?”

 “당연히 너도 크리스 왕족의 후손이지. 하지만 넌 날개 없이 태어난 거야. 당시 크리스 왕국엔 가끔 날개 없이 태어난 아이들이 있었어. 아마 그건 날개 없는 국왕의 할아버지 유전자 때문일 듯싶어. 지금은 내가 널 선택해서 우리 편이 된 거야.”

 “…… 그런데 왜 나를?”

 “나는 수인이를 통해서 네가 크리스 왕족이라는 걸 알았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

 “크리스 왕족들은 날개를 받쳐주는 뼈대처럼, 그들의 손가락이 유난히 길고 가늘어. 너의 손가락도 그렇고. 몸도 호리호리한데다가…… 그리고 지혜와 열정 중에 최소한 한 가지만은 어느 누구보다도 특출나지. 너도 대단해.”

 “개뿔! 마녀 할멈도 크리스 왕족이겠다! 그리고 크리스 왕족이 나 말고도 더 있을 거 아니야. 하필 왜 나냐고!”

 나는 빈정거리며 따져댔다.

 “그건…… 열정이나 지혜가 없는 크리스 왕족들의 목에 아무리 우리가 날개가 돋는 독 기운을 뿜어대도 어깨에 날개가 돋지 않아…… 널 선택한 건, 너의 열정을 높이 샀고…… 그리고 또 있다면…… 너의 아빠를 저세상 사람이 되게 한 게 바로 내 불찰이었거든. 너에게 사죄를 하고 싶었어. 그래서 너를 우리들의 왕으로…… 미안해.”

 “뭐라고? 설마…… 네가 죽인 거?”

 나는 실비아의 멱살을 꽉 잡고, 그녀를 때려눕히려는 시늉을 보였다. 그녀는 내 모습에 발발 떨었다.

 “진정해! 당시 네 아빠가 우리 정체를 알아버렸어. 그걸 날개 없는 크리스 왕족의 후손인 한스 선생에게 다 말해 버렸고.”

 “? 그렇다고 죽여?”

 “절대 아니야 그건.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한스 선생의 계략이 있었어. 그는 너처럼 날개 없는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났어. 하지만 그는 크리스 왕족의 중요한 인물인 거야. 친혈육인 크리스와 맨날 다툰 프톨레마이오스의 계보인 현 정부의 실세이기도 하고. 박쥐 같은 인간, 한스!”

 실비아는 긴장한 탓인지 식은땀을 흘려가며 논리 정연치 못한 어투로 계속 설명해갔다.

 “우린 당장 죽을 위기에 놓였던 거야. 네 아빠의 연구팀이 조변림에만 오지 않았어도……. 하지만 네 아빠를 죽인 건 우리가 아닌 바로 한스 선생이야!”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스 선생이 내 아빠를 죽였다고? 너희들이 조변림 사건을 알게 된 내 아빠를 먼저 죽였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녀는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

 “, 그것도 그렇겠지만, 우린 한스 선생이 더 두려웠기 때문에, 한스 선생을 먼저 해치우려고 했었어. 하지만…… 지금 말해도 넌 이해를 못 해.”

 “뭘 이해를 못 한다는 거야! 아빠 서재에서 환상을 봤는데, 아빠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은 건 다아닌, 여린 아이…… , 동생 수인이었다고!”

 “가온! 그만해! 나도 짐작만 갈 뿐이야. 내가 지금 너에게 뭐라고 말한들, 넌 이해 못 한다니까!”

 실비아도 한스 선생님과 비슷한 논조로 말했다. 그 둘은 지금 말해봤자 내가 이해 못 할 거라는 거다.

 마침내 그녀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누가 네 아빠를 저세상 사람이 되게 했든, 다 용서해줘. 이젠 넌 우리의 왕이 되었어. 돌이킬 수 없다고!”

 그녀는 날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으로 내몰려 했다.

 “왕 따윈 필요 없어!”

 난 세상이 너무 허망했다. 수인이와의 달콤한 삶만을 꿈꿔 왔는데……. 그리고…… 한스 선생님은 우리를 돕지 않았는가.

 “한스 선생이 아빠를 죽였다니! 그는 날 절대 배신하지 않아!”

 나는 한스 선생님을 믿었고, 그와의 우정도 과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비아는 코웃음 치고 말았다.

 “그는 우리 몇몇만을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야. 초토화 시키려는 거지. 우리 날개 달린 사람들을 이간질시켜 내분을 일으키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우리를 사라지게 하려는 거……. 그에게는 나팔이 있어.”

 그녀는 엉뚱한 말을 꺼내는 듯했다.

 “……나팔? …… 맞아.”

 난 그녀가 듣지 못할 정도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스 선생님에게는 정말 그녀의 말대로 나팔이 있었다. 금고를 열면 확연히 눈에 띌 정도다. 허름하고 낡아 보였지만, 단단해 보였다.

 “그 나팔만 불면…… 불을 먹는다는 새가…… 더 이상 말을 못하겠네. 너무 끔찍하게 당해서.”

 그녀에게서 갈수록 점점 상상을 초월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설득력이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나에겐 여러 기억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아, 실비아,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한데, 꿈속에서 본 것 같기도…… 혹시 그 새 이름이……

 너무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생각날 듯 말 듯 하거나 선택하기가 곤란할 때마다 늘 그랬다.

 “……그럼 실비아, 넌 전쟁을 일으킬 거야?”

 “이제부터는 네가 왕이야. 여기에선 너를 총령님으로 부를 거야. 하얀 날개를 달고 있는 이들은 가난한 평민인데…… 억눌린 게 많다고. 지금은 자유까지 잃었으니, 네가 전쟁을 일으키길 바라고 있어. 이것만은 잊지 않길 바래. 우리는 큰 욕심을 부리려는 게 아니야. 단지 인간들처럼 자유롭게 길을 활보하며 다니길 바랄 뿐이라는 걸…….”

 “, 그렇군! 그럼 하얀색 날개를 달고 있는 수인이는 어떻게 네 동생인 거지? …… 너랑 이복동생인가 보네.”

 그녀는 이 말엔 침묵하고 말았다. 나는 어물쩍 넘어갔다.

 “그럼 내 엄마는 뭐지? 귀족 아니면 평민?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면?”

 나는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묻고 또 물었다.

 “네 엄마는 평민이지. 말했잖아, 내가 널 선택해서…… 넌 왕이 된 거라고…… 전쟁에서 승리? 이건 우리의 오랜 바램이지. 좋아, 그럼…… 승리한 후 그 다음엔 네가 원하는 건 뭐지? 생각해 본 거라도 있니?”

 “수인이에게 직접 내 아빠를 죽였는지 물어보고……. 같이 이곳을 떠나겠어.”

 “그것만은 안 돼!”

 그녀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질투의 여신! 실비아.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마주 대할 자신이 없었는지 어디론가 몸을 숨겨버렸다. 그즈음 실비아의 호위병이 문밖에서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이제는 나의 비서관과 다름없었다.

 “한스 선생 아시죠?”

 “알다마다. 왜 물어보는 거지?”

 나는 총령 자리로 빠르게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위엄을 갖고 냉정하게 말을 꺼냈다. 호위병은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중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듯했다.

 “한스 선생…… 그가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전했습니다. 때는 다음 달 1일 초저녁 6시쯤이라 합니다.”

 “뭐라고? 한스 선생이?”

 나는 그의 지혜가 출중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국정의 실세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다.

 “지위도 총지휘관이라고 합니다. 국방부가 그를 배후 전략가에서 승격시켰답니다.”

 “뭐라고? 그가 전쟁의 지휘도? 그는 고등학교 교사일 뿐이라고!”

 “그건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서 그들의 여론을 들으려는 일종의 계략이었다고 합니다. 한스 선생이 위엄 있게 대중들에게 다가가면, 대중들은 속마음을 절대 드러내지 않을 겁니다. 아마 피해버리거나 뒤에서 정치나 잘하라고 욕할 게 뻔한 거죠.”

 ‘, 실비아 말이 맞는 건가?’

 나도 모르게 깃펜을 오른손에 꽉 쥔 채, 머리를 떨어뜨려 두 팔로 파묻고는, 깊은 생각에 잠겨버렸다.

 ‘아니야, 절대 아닐 거야. 그는 나의 선생이면서 정의로움을 아는 학자라고. 몰래 숨어 와서 기습적으로 공격해도 되는데, 공격 시간까지 알려왔잖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한 한숨을 여러 번 내쉬고, 머리를 꼿꼿이 세워 전방을 주시했다. 참을성 있게 내 말을 기다리고 있던 호위병은 나처럼 크게 놀란 눈치 같지는 않았다. 그는 나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만을 던질 뿐이었다.

 “호위병, 알겠네.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게나. 일 보게.”

 “네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총령님.”

 호위병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총령실 앞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왕실의 불만 세력일까? 아니면 암살자?’

 나는 조짐이 이상해 들고 있던 깃펜을 급히 잉크병에 담가 버리고, 숨죽이며 바닥으로 몸을 급격하게 낮췄다. 나도 모르게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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