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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31] 카나리아의 흔적 Canary's W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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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4

 

 

날개 달린 사람들의 서식지 

 

1

 

 칼 포퍼와 여러 사상가들이 바보처럼 내일 태양이 떠오를지에 대해 논쟁을 벌여왔다. 그들은 꽤나 자신들이 지적인 신사인양 의시 댔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현실성 없는 귀족들의 신선놀음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논쟁과 상관없이 다음 날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말을 예언한 이들도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들의 주장은 공허했다. 내일도 분명 아침은 찾아올 텐데 말이다.

 예전 같으면, 과학혁명도 침범할 수 없는 아침은 나에겐 희망이고 행복이었다. 자연스럽게 사상가들의 논쟁과 예언자들의 말들은 귓가에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 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일 수 있는 수인이가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직접 육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 모키도 죽었다. 고통으로 가득 찬 아침이 의심할 여지도 없이 찾아오다 보니, 종말론을 주장한 예언자의 말이 사실로 되길 기도하고 싶을 뿐이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도 지나 대학 입시를 치러야 할 졸업반이 된 나에겐, 여전히 나의 방랑의 정착지도 흩어져 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이런저런 것들로 여러 달을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조금이라도 내가 열이 있는 날이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학교는 가지 말고 쉬라고 할 뿐. 그녀에게는 가족이라는 게 나 말고 없어서일까? 나의 건강에만 더욱더 신경을 쓰는 듯싶었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 서재에 들어간 일이 있는 이후로는, 그녀의 심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열이 그다지 심하지 않으면, 얼른 학교에 가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수인이처럼 우울한 눈빛을 하고 집 밖을 나서곤 했다. 마치 급한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화장실이라도 되돌아서 갈 듯한 찝찝한 느낌으로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 서재의 열쇠와 새들의 서식지책은 그녀가 어디에 숨겼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온데간데없었다. 집안의 문이란 문은 다 열 수 있는 만능열쇠도 흔적조차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슬프게도 조변림과 관련한 모든 미로게임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의 모든 것들이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엉킨 생각의 실타래를 툭툭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먼저 학교를 향해야 했고, 공부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되었다. 열병이 가끔 돋기도 했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가면서 다행히 몸에 열은 나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 짜릿한 쾌감의 배설을 하고 나면, 몸도 한결 더 가벼워지기도 했다. 오늘도 어머니는 평소 해왔던 것처럼 학교로 서둘러 나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녀가 자동차 엔진에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그녀처럼 얼른 문밖을 나서려고 책가방을 챙겼다.

 그런데…… 갑자기 거실에서 전화벨이 요란히 울려댔다. 내 친구 모키의 죽음 이후부터는 전화벨 소리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게 되었다. 내 목덜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어차피 지나간 일이고, 전화 정도 받을 수 있는 여유도 있고 해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돌리려고 애썼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미끈하게 허리 잘록해 보이는 수화기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여보세요.”

 “가온이니?”

 “, …… 선생님이시네요. 안녕하셨어요?”

 전화 건 이는 어머니가 근무하는 학교의 동료, 수빈 선생님이었다. 학교에서 그나마 어머니의 실력을 가장 많이 인정해 주는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기간제 교사인 어머니가 어떻게 해서든지 정식교사가 되도록 학교에 건의까지 한다는 거다. 그녀 덕분에 지금은 어머니가 거의 정식교사처럼 담임도 맡았고, 계약기간도 크게 늘어났다. 나도 그녀를 어머니 생일 때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세련된 숙녀처럼 보였고 쾌활했지만, 눈 깜박이는 횟수가 남들보다 좀 잦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너무 자상해서 내 큰누나 같았다. 가끔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나의 고민을 정성스레 들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그녀가 전화를 걸어온 적은 좀처럼 드문 경우였다.

 “엄마가 좀 어떠시니?”

 “?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떡해요. 엄마는 학교 좀 전에 가셨는데요.”

 “? 엄마가 아프다면서, 나흘째 학교에 안 나오시고 있는데!”

 나는 몹시 당황스러워 고개를 여러 번 갸웃거렸다.

 “정말요? 아니, 그럴 리 없어요. 엄마는 아침마다 바쁘게 나가시는데요.”

 나는 잠에서 덜 깨서 수빈 선생님의 말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이럴 수가! 가온아, 엄마 오시면, 학교에도 연락을 주는 거 잊지 말고. 잘 될 거야. 걱정 마라.”

 “…….”

 ‘엄마가 방금 전 자동차에 시동 건 소리가 들렸는데…… 아마 멀리는 가지 못했을 거야.’

 나는 이런 생각이 들어서 수빈 선생님에게는 예의상 짤막하게나마 대답한 후, 창밖을 내다봤다. 하지만…… 어디에도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요 며칠째 어머니가 학교를 결근하고 있었다는 건데……. 불안감이 또 엄습해 왔다. 그래도 그녀는 오늘…… 집에 올 것이다. 가족이 나 말고 없으니까. 아무리 몰인정한 부모라도 자식 혼자 집에 내버려둘 수는 없을 거다. 만일 어머니가 집에 오지 않는다면, 듣기 싫은 그녀의 잔소리도 듣지 못하게 되는 걸까? 난 이제 고아가 되는 걸까? 설마…….

 나는 한스 선생님을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아무리 열심히 궁리해 봐도 이 방법밖엔 없다고나 할까. 자칫 잘못하다가 어머니까지 잃게 되면…… 내 주변의 거의 모든 이들이 영원히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한스 선생님이라면, 아니 그만이 나의 이러한 여러 고민들과 정황들을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그게 아니라고 해도 그럴 거라고 지금은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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