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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Novel & BooK

[Social Fantasy22] 카나리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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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ary's Wake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Social Fantasy Novel

 

 

 

2

 

 시간은 흘러 벌써 칠판 위의 시계는 8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학생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교실 안이 요란한 소리로 시끌벅적대기 시작했다. 마치 어렸을 적 축구와 팽이치기 놀이할 때를 연상시키듯 말이다. 그땐 정말 신났었는데……. 이들 반 친구 중에 아무라도 붙잡아 놓고 울먹거리며 나의 고민을 다 털어놓고 싶었다. 전에도 생각해봤지만, 나의 소심한 성격 탓에 문제가 복잡해지고, 일만 더 꼬여갈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때를 기다린 듯 학교 방송이 교실 앞 왼쪽 상단에 위치한 스피커를 통해 요란하게 들려왔다.

 “교실에 있는 학생 전원은 체육관으로 집합하라!”

 방송부 선생님의 목소리가 긴급소식을 알리는 것처럼 다급하고 우렁차게 울려댔다. 오늘은 아침에 임시조회가 있으니, 체육관으로 모이라는 것이다.

 반 친구들은 철부지처럼 환호성을 질러댔다. 우리 가람국제고에서는 조회가 있는 날이면, 1교시 정도는 건너뛰는 게 관례인지라, 피곤한 수업보다는 지루하지만 긴 시간을 잡아먹는 조회가 훨씬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나도 그럴 것이 첫 교시는 영어 독해 수업인데, 어제 충격적인 일로 발표 숙제를 못 해놓았기 때문이다. 옆에 세진이만은 교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무덤덤해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독해 책에 빼곡히 적어 놓은 걸 반복해서 소리 내며 읽고 있었는데, 허사가 되어버려 심지어 공허함마저 밀려왔나 보다. 나는 그를 위로라도 하고 싶어 어깨를 쳐줬다. 그는 나를 힐끗 한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래, 세진이에게 내 고민을 다 털어놓을까. 이 친구는 믿을 만한데…….’

 체육관 모퉁이를 걸어갈 때, 우연 결에 세진이의 왼쪽 손목에 차여진 고가의 명품 스위스 S브랜드 시계가 눈에 띄었다. 요즘 못 보던 고가의 시계였다. 그의 집은 부자였다. 하지만 이 녀석은 배부름에 겨워 부모님이 명품을 사주는 데는 인색하다며, 늘 불만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면 그렇지. 이건 명품이 아니고 뭐야? 단지 유명 브랜드일 뿐인가? 네 같은 부자들은 욕심이 끊임없다니까. 나 같은 애들이 어떻게 되든 관심이야 있겠어. 이 친구도 아닌 거야. 그래, 아니야.’

 나는 홀로 이곳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고, 편견에 휩싸여 무덤덤하게 체육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체육관에 학생들이 조금씩 가득 차 왔다. 리듬체조 선수들은 해맑게 웃으며, 마치 도움 닦기 연습이라도 하듯, 빠른 속도감으로 달려가면서, 어느 한 시점에 다다르더니 오므렸던 두 다리와 팔을 쭉 펴 공중으로 치솟았다. 마치 새가 나는 형상 같았다. 그러고는 한 바퀴를 돌아, 어느새 가볍게 마룻바닥에 착지했다. 그걸 지켜보던 몇몇 학생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나도 덩달아 괴음까지 섞어가며 소리를 질러댔다. 짓눌려 있던 내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리듬체조에 갓 입문한 것처럼 보이는 새내기들은 체육관 한 모퉁이에 물걸레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내 친구 성호와 염문을 뿌렸던 헤른이가 눈에 띄었다. 그녀도 밝아 보였다. 심지어 졸업반 선배들마저도 이때만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떠들어댔다. 곳곳에서 선배들이 한스 선생님에 대해 입 마를 정도로 극찬을 늘어놓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목격됐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모든 게 거짓으로 밝혀지겠지. 나는 한스 선생님이 말했던 모든 걸 학교게시판에 올릴 거고……. 크게 문제가 생기더라도 부자들의 천국인, 꼴도 보기 싫은 이 학교…… 난 관례대로 강제 전학 정도 가면 되잖아. 많은 이들이 그가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뒤에서 그를 얼마나 비웃어 댈까?’

 갑자기 체육관이 숙연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한스 선생님이 나타난 거였다. 그가 단상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으려 하자, 다들 그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떠들어 댔던 소리가 일제히 멈추게 된 거였다. 찬물을 끼얹듯 조용해졌다.

 그러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마이크 잡던 손을 어색하게 내려놓고 왼쪽 옆으로 섰다. 그는 마이크로 조용히 하라고 말하려고 했나 보다. 놀라운 그의 카리스마가 소름 끼칠 정도였다.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한스 선생! 조금만 기다려라, 순진한 학생들이여!’

 그는 어젯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초췌한 기색이 전혀 없는 밝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의 목에 갖다 댄 칼에 배여 피가 흐른 곳엔 어김없이 네모난 반투명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교감도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한스 선생님의 말대로 눈 비비고 봐도 교장은 보이지가 않았다. 항상 조회 때면, 그는 단상 뒤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와 선생님들과 다소 멀찌감치 떨어져 어깨에 잔뜩 힘주고, 서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그러다가 자신이 말할 차례만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매서운 눈매로 마이크에 가까이 다가가 침 튀겨가며 일장연설을 늘어놓곤 했고……. 소름이 확 돋았다. 정말 그의 말대로 죽었다는 말인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윽고 교감이 마이크를 잡았다.

 “학생 여러분, 교장 선생님이 갑작스럽게 몸이 아파 제가 교장직을 대행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저뿐만 아니라, 여러 선생님들의 지도 아래 학사일정대로 잘 수행해주길 바랍니다.”

 그가 이 같은 딱딱하고 진부한 말만 전하고 뒤로 물러나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학년 부장 선생님들이 교대로 단상 앞으로 나와서 달라진 교칙들을 상세히 설명해줬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 한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가 아닌가.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 말인가? 교장은 죽고 만 것인가? 정말 새들의 공격을 받아서 처참하게 죽었다는 건가? 그것도 조변림의 사건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왜 나에게 진실을 말한 걸까? 내 칼에 죽을까 봐서?’

 나는 이런저런 여러 생각에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도 조변림의 사건을 알게 됐더라면, 죽었다는 말인데, 그러면 한스 선생님도 죽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이것만은 아직도 의문으로 남은 채, 또 복잡한 퍼즐이 내 머릿속에서 풀리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맴돌고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한스 선생님이 갑자기 불안한 눈초리로 이리저리 학생들을 살피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그의 눈이 순간 허공에서 마주쳤다. 나는 어색해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말았다. 학생으로서 감히 스승의 목에 칼을 댔다는 것만으로도 난 퇴학 감이었다는 생각이 들으니, 떳떳하지 않아서도…….

 나는 그를 보지 않은 척하다가 그의 눈빛을 살폈다. 그는 평정심을 잃은 나와는 다르게, 뭔가를 안심해 하듯이 얼굴에 엷은 웃음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혹시 내가 새벽녘에 죽기라도 한 건 아닌가 싶었나 보다.

 나는 문득 수인이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리저리 뒤돌아보며, 체육관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하지만 그녀는 안타깝게도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서야 그녀가 몇 반이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바보 멍청이.’

 나는 내 자신이 무지하게 한심스러운 나머지, 학대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녀가 항상 2층 복도 오른쪽 끝에서 달려와서 5반이나 6반 정도로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관심을 보인 실비아도 마찬가지로 그쪽에서 가끔 나와 마주쳤던 기억이 있어서 5, 6반 정도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 둘은 어디에도 없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실비아는 어떻게 되든 나에겐 상관이 없는 거 아닌가. 하지만 수인이는 어제 아프다고 집에 그냥 가버린 걸 보면…… 많이 아파서 결석했다고 생각되니 안심은 됐지만, 왠지 모르게 걱정부터 앞섰다. 그녀의 슬픈 얼굴 때문일까? 나의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끊임없이 그녀의 집을 찾아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나는 역시 바보임에 틀림없었다. 그녀의 집도 모르고 있었던 거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자 새어머니를 맞아들였고, 새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마저 지병으로 일찍 여의고, 새어머니와 그녀의 …… 이렇게 셋이서 한집에서 단란하게 산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신비스런 여자로 남고 싶은지, 집의 위치를 정확히 가르쳐주지는 않았다. 에메랄드 숲 가장자리에서 집까지 100미터 단거리 달리기 시합하듯이 뛰어가면, 15초 내에 도착한다는 말로 대신했었다. 그리고 집에는 큰 정원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 100미터 높이의 큰 나무가 있다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났다. 나는 단순히 더 친해지면 그때 가서 그녀가 상세히 말해주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100미터 높이의 나무?’

 그땐 어처구니없는 말이라서 나는 웃고만 말았다. 수인이는 이처럼 이따금 과장된 말들을 늘어놓곤 했는데, 한번은 새어머니가 자신을 가끔씩 때리고 혹독히 괴롭힌다나. 또 그녀의 집은 궁궐처럼 장대하지만, 실상 그녀 자신만은 다락방처럼 조그만 방에서 웅크리며 산다고 했다. 어떨 때는 마치 그녀가 계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 동화의 주인공이 된 양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서도.

 아무튼 내가 그녀의 집에 선뜻 가겠다고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녀에게는 아주 예쁜 새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는 평소 집에서 한 가닥의 실오라기 천도 치지 않고 생활한다나 뭐라나. 수인이는 입버릇처럼 내가 그녀의 집에 놀러 오면, 늘씬한 언니 몸매에 반해서 자기보다 언니를 더 좋아하게 된다고 말해왔다. 그때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버렸고, 왠지 쑥스럽고 해서 그녀의 집이 어딘지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고, 거기를 안들 선뜻 가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집을 찾아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망설여졌다.

 ‘그녀가 단지 하루 정도 아파서 학교에 오지 않았겠지.’라는 긍정적인 믿음도 있었다. 나는 기다려 보자는 식으로 마음을 추스르려 했다.

 어떤 것도 명확한 것은 없었다. 교장의 죽음도 믿기는 어려웠지만, 여러 정황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 건지…… 나에겐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물질론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믿는 형이상학자들을 맹렬히 비판했고. 그러면서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마음을 마치 전부 이해한 것처럼 말이다. ‘애매모호함그 자체는 사실 그대로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신종 마약이 아닐까 싶다.

 나는 해답 없는 여러 생각들을 하다가 무심코 체육관 위쪽 창문을 보게 됐다. 여전히 새들이 지침 없이 우리 학교를 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늘에다가 새들이 빨주노초파남보의 현란한 색으로 수를 놓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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